시한편 56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박선경) : 무심한 것들로부터의 행복

No. 9 0 5 2008년 2월 14일(목)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박선경 전동차 유리문에 기대어서다 남아버린 손자국 어둠 속 당신의 얼굴은 플라타너스의 살아 번지는 푸른 잎맥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위로 당신은 신문을 보거나 나의 등 뒤에서 고개 숙여 잠이든 떠오르지 않는 얼굴 나의 가슴을 관통하여 뭉클 몸 밖을 빠져 나온 아득한 유리문 밖, 안전선에서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침목을 따라 바삐 달아나는 표정들 미로처럼 어둔 통로를 빠져나간 그 자리에 길모퉁이 플라타너스 나는 벌써 몇 번째 당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 데자뷰(deja-vu)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의미. 이미 와 본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나 환상. 기억의 단편화가 심하여 다른 기억들과 연관을 맺기가 어려..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박선경) : 무심한 것들로부터의 행복

No. 9 0 5 2008년 2월 14일(목)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박선경 전동차 유리문에 기대어서다 남아버린 손자국 어둠 속 당신의 얼굴은 플라타너스의 살아 번지는 푸른 잎맥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위로 당신은 신문을 보거나 나의 등 뒤에서 고개 숙여 잠이든 떠오르지 않는 얼굴 나의 가슴을 관통하여 뭉클 몸 밖을 빠져 나온 아득한 유리문 밖, 안전선에서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침목을 따라 바삐 달아나는 표정들 미로처럼 어둔 통로를 빠져나간 그 자리에 길모퉁이 플라타너스 나는 벌써 몇 번째 당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 데자뷰(deja-vu)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의미. 이미 와 본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나 환상. 기억의 단편화가 심하여 다른 기억들과 연관을 맺기가 어려..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박선경) : 무심한 것들로부터의 행복

No. 9 0 5 2008년 2월 14일(목)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박선경 전동차 유리문에 기대어서다 남아버린 손자국 어둠 속 당신의 얼굴은 플라타너스의 살아 번지는 푸른 잎맥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위로 당신은 신문을 보거나 나의 등 뒤에서 고개 숙여 잠이든 떠오르지 않는 얼굴 나의 가슴을 관통하여 뭉클 몸 밖을 빠져 나온 아득한 유리문 밖, 안전선에서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침목을 따라 바삐 달아나는 표정들 미로처럼 어둔 통로를 빠져나간 그 자리에 길모퉁이 플라타너스 나는 벌써 몇 번째 당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 데자뷰(deja-vu)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의미. 이미 와 본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나 환상. 기억의 단편화가 심하여 다른 기억들과 연관을 맺기가 어려..

[태안반도] 사과를 깎을까요? - 온형근 : 당신에게서 희망과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No. 9 0 4 2008년 1월 25일(금) 사과를 깎을까요? 온형근 사과 깎으며 미소를 배운다. 가장 얇게, 끊어지지 않게 예쁘게 얼른, 모양내기다. 흔한 것은 맛을 내지 못한다. 제철에는 손이 가지 않는 것들 그러려니 했던 것이 사과를 만난다. 가는 곳마다 사과를 깎으면서 제가 사과를 깎을까요? 사과를 씹으면서 사과를 한다. 깎지 못해 못생긴 속내를 깎는다. 손님에게 내놓지 않는 무심을 벤다. 큰 강이 몇 번씩 범람하고 냇가의 길이 고쳐지고 바뀐 후 과수원으로 가는 길, 막힌 후에야 사과를 깎으면서 귀한 마음이 든다. 예쁘게 얇게 깎는 솜씨가 줄었지만 끊어지지 않게 깎을 수는 있어서 속내를 비비며 무심을 깎아낸다. 오늘 함께 나누기 때로는 흔한 사과로 보이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면 조금은..

[태안반도] 사과를 깎을까요? - 온형근 : 당신에게서 희망과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No. 9 0 4 2008년 1월 25일(금) 사과를 깎을까요? 온형근 사과 깎으며 미소를 배운다. 가장 얇게, 끊어지지 않게 예쁘게 얼른, 모양내기다. 흔한 것은 맛을 내지 못한다. 제철에는 손이 가지 않는 것들 그러려니 했던 것이 사과를 만난다. 가는 곳마다 사과를 깎으면서 제가 사과를 깎을까요? 사과를 씹으면서 사과를 한다. 깎지 못해 못생긴 속내를 깎는다. 손님에게 내놓지 않는 무심을 벤다. 큰 강이 몇 번씩 범람하고 냇가의 길이 고쳐지고 바뀐 후 과수원으로 가는 길, 막힌 후에야 사과를 깎으면서 귀한 마음이 든다. 예쁘게 얇게 깎는 솜씨가 줄었지만 끊어지지 않게 깎을 수는 있어서 속내를 비비며 무심을 깎아낸다. 오늘 함께 나누기 때로는 흔한 사과로 보이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면 조금은..

[태안반도] 사과를 깎을까요? - 온형근 : 당신에게서 희망과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No. 9 0 4 2008년 1월 25일(금) 사과를 깎을까요? 온형근 사과 깎으며 미소를 배운다. 가장 얇게, 끊어지지 않게 예쁘게 얼른, 모양내기다. 흔한 것은 맛을 내지 못한다. 제철에는 손이 가지 않는 것들 그러려니 했던 것이 사과를 만난다. 가는 곳마다 사과를 깎으면서 제가 사과를 깎을까요? 사과를 씹으면서 사과를 한다. 깎지 못해 못생긴 속내를 깎는다. 손님에게 내놓지 않는 무심을 벤다. 큰 강이 몇 번씩 범람하고 냇가의 길이 고쳐지고 바뀐 후 과수원으로 가는 길, 막힌 후에야 사과를 깎으면서 귀한 마음이 든다. 예쁘게 얇게 깎는 솜씨가 줄었지만 끊어지지 않게 깎을 수는 있어서 속내를 비비며 무심을 깎아낸다. 오늘 함께 나누기 때로는 흔한 사과로 보이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면 조금은..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 이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No. 9 0 3 2008년 1월 22일(화) 결혼에 대하여 정호승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녁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 이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No. 9 0 3 2008년 1월 22일(화) 결혼에 대하여 정호승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녁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 이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No. 9 0 3 2008년 1월 22일(화) 결혼에 대하여 정호승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녁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

기다림 - 이수정 : 어제의 사랑보다 오늘의 사랑이 조금 더 깊다면

No. 9 0 2 2008년 1월 15일(화) 기 다 림 이수정 숲은 옥상에 세들어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집 긴 계단을 걸어 문을 열 때도 닫을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숲은 세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면 길다란 가지들이 백 갈래의 가지를 뻗고 천 갈래의 뿌리를 내립니다 숲은 숨 죽이고 세들어 있습니다만 잎사귀들이 자꾸만 달싹이고 반짝입니다 잎들이 나는 연습을 합니다 숲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꽉 붙들고 있습니다 잎사귀들은 벌써 나는 연습을 마쳤습니다 빛나는 사과를 따듯 당신이 허공에서 잎을 따낼 때까지 잎사귀들은 배회하고 다닐 것입니다 외로운 섬이 갈매기를 띄우듯이 이젠 잎을 날려야 하나 봅니다 오늘 함께 나누기 눈 속 새 순을 보았습니다. 겨울을 참아내고 봄을 기다리는 것이 늘 그 모습 그 형태인 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