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칠환 시인의 "이 아침에 만나는 시" 고추씨 오쟁이에 바람 한 줄 살금 딛고 가는 겨울 한낮 입 꽝 벌린 장독대 항아리들 금줄에 걸린 햇살들이 때 절은 문지방 애써 기어오르다 고드름 끝에 쨍그랑 부서진다 그러자 직립으로 낙하하는 물방울 그 투명한 속살 그 살결 파고들어 마악 길 떠나려는 찰나 그 밑에서 한가하게 한 세월 좋게 넘어가던 고양이가 그만 그 살가운 파고듦에 밥그릇을 뒤엎고 등을 세우며 부르르 떨고 선다 내게 왔다가 가버린 사랑은 늘 그러하였다 -시집 ‘씨앗의 힘’(세계사) 중에서 ‘동작 그만!’ 세상 만물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조리 발가벗긴 채 꽝꽝 언 들판에서 ‘얼차려’ 시키던 동장군(冬將軍)의 위용이 어째 무력해진 요즘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저이의 기합소리가 대부분 허풍이었음이 드러나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