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러브레터" 22

사랑의 나무를 가꾸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하느님이 뜻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는 늘 삐걱거립니다. 여자는 남자를 지배하려 하고, 남자는 여자를 노예로 만들려 하고, 가끔은 가까이 있는 게 무거워서 홀가분하게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일은 실패했는지도 모릅니다. 지상에서의 종교의 번성은 그 실패의 증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실패한 하느님을 나무라고 야유할 자격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나무를 심은 것은 하느님의 일이지만, 그 나무를 가꾸고 키워 가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여자를 만들 때, 남자의 머리로 여자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여자가 남자를 지배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남자의 발로 여자를 만들지 않은 이유..

사랑의 나무를 가꾸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하느님이 뜻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는 늘 삐걱거립니다. 여자는 남자를 지배하려 하고, 남자는 여자를 노예로 만들려 하고, 가끔은 가까이 있는 게 무거워서 홀가분하게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일은 실패했는지도 모릅니다. 지상에서의 종교의 번성은 그 실패의 증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실패한 하느님을 나무라고 야유할 자격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나무를 심은 것은 하느님의 일이지만, 그 나무를 가꾸고 키워 가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여자를 만들 때, 남자의 머리로 여자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여자가 남자를 지배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남자의 발로 여자를 만들지 않은 이유..

사랑의 나무를 가꾸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하느님이 뜻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는 늘 삐걱거립니다. 여자는 남자를 지배하려 하고, 남자는 여자를 노예로 만들려 하고, 가끔은 가까이 있는 게 무거워서 홀가분하게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일은 실패했는지도 모릅니다. 지상에서의 종교의 번성은 그 실패의 증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실패한 하느님을 나무라고 야유할 자격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나무를 심은 것은 하느님의 일이지만, 그 나무를 가꾸고 키워 가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여자를 만들 때, 남자의 머리로 여자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여자가 남자를 지배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남자의 발로 여자를 만들지 않은 이유..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제 작업실 주변에는 늙은 감나무들이 많습니다. 그 감나무들이 가지마다 뱉어놓은 연초록 이파리들이 요즘 장관입니다. 아마 감나무들은 올 가을에도 누가 따가지도 않을 감을 주렁주렁 매달게 되겠죠. 모든 열매는 나무들의 섹스로 만들어진 것. 수십 년 묵은 늙은 감나무에게도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게 마련이지요. 며칠 전에 그 감나무 하나에다 구멍을 파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었는데, 문득 진도 아리랑 한 소절이 떠올랐습니다. 없는 구멍을 뚫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으며 남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요? 나이는? 하던 일은? 생김새는? 그런데 남의 여자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이렇게 빙긋이 웃음 머금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제 작업실 주변에는 늙은 감나무들이 많습니다. 그 감나무들이 가지마다 뱉어놓은 연초록 이파리들이 요즘 장관입니다. 아마 감나무들은 올 가을에도 누가 따가지도 않을 감을 주렁주렁 매달게 되겠죠. 모든 열매는 나무들의 섹스로 만들어진 것. 수십 년 묵은 늙은 감나무에게도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게 마련이지요. 며칠 전에 그 감나무 하나에다 구멍을 파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었는데, 문득 진도 아리랑 한 소절이 떠올랐습니다. 없는 구멍을 뚫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으며 남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요? 나이는? 하던 일은? 생김새는? 그런데 남의 여자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이렇게 빙긋이 웃음 머금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제 작업실 주변에는 늙은 감나무들이 많습니다. 그 감나무들이 가지마다 뱉어놓은 연초록 이파리들이 요즘 장관입니다. 아마 감나무들은 올 가을에도 누가 따가지도 않을 감을 주렁주렁 매달게 되겠죠. 모든 열매는 나무들의 섹스로 만들어진 것. 수십 년 묵은 늙은 감나무에게도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게 마련이지요. 며칠 전에 그 감나무 하나에다 구멍을 파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었는데, 문득 진도 아리랑 한 소절이 떠올랐습니다. 없는 구멍을 뚫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으며 남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요? 나이는? 하던 일은? 생김새는? 그런데 남의 여자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이렇게 빙긋이 웃음 머금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 [2007.11.09]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다리의 관절은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하나의 연결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한 발자국을 옮겨 걷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걷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춘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몸 전체가 걷는 일에 기꺼이 복무하고자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기 시작해 보라. 우리의 몸은 막 시동을 건 엔진처럼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팔은 발걸음에 맞춰 저절로 흔들릴 것이며, 눈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샅샅이 탐색하며 나아갈 곳을 살필 것이며, 귀는 무한히 열리게 되고,..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 [2007.11.09]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다리의 관절은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하나의 연결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한 발자국을 옮겨 걷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걷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춘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몸 전체가 걷는 일에 기꺼이 복무하고자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기 시작해 보라. 우리의 몸은 막 시동을 건 엔진처럼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팔은 발걸음에 맞춰 저절로 흔들릴 것이며, 눈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샅샅이 탐색하며 나아갈 곳을 살필 것이며, 귀는 무한히 열리게 되고,..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 [2007.11.09]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다리의 관절은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하나의 연결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한 발자국을 옮겨 걷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걷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춘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몸 전체가 걷는 일에 기꺼이 복무하고자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기 시작해 보라. 우리의 몸은 막 시동을 건 엔진처럼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팔은 발걸음에 맞춰 저절로 흔들릴 것이며, 눈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샅샅이 탐색하며 나아갈 곳을 살필 것이며, 귀는 무한히 열리게 되고,..

[안도현의 러브레터 1]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혹시 영화 ‘일 포스티노’를 기억하시는지요? 거기 등장하는 한적한 바닷가의 배불뚝이 시인이 칠레 태생의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이 시는 그가 세 번째 아내 마틸데 우루티아에게 바친 시 100편중의 일부분입니다. 사랑을 구하기 위해 그 대상에게 시를 바치는 행위는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치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 앞에서는 어쨌든 엄숙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전통이 우리의 머릿속에는 들어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시를 읽으면서 네루다에게 너무 손가락질 하지는 마십시오. 그는 솔직하면서도 진지한 시인입니다. 사랑에 빠져 본 적 있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손에 열쇠 두 개를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쾌락과 고통, 안정과 불안, 용서와 증오, 그런 양면성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