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러브레터"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ohmylove 2007. 12. 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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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업실 주변에는 늙은 감나무들이 많습니다. 그 감나무들이 가지마다 뱉어놓은 연초록 이파리들이 요즘 장관입니다. 아마 감나무들은 올 가을에도 누가 따가지도 않을 감을 주렁주렁 매달게 되겠죠. 모든 열매는 나무들의 섹스로 만들어진 것. 수십 년 묵은 늙은 감나무에게도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게 마련이지요.


며칠 전에 그 감나무 하나에다 구멍을 파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었는데, 문득 진도 아리랑 한 소절이 떠올랐습니다. 없는 구멍을 뚫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으며 남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요? 나이는? 하던 일은? 생김새는? 그런데 남의 여자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이렇게 빙긋이 웃음 머금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찾네



- 민요 <진도 아리랑> 중에서


* 이 글은 안도현 시인 께서 제공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