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17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 [2007.11.09]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다리의 관절은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하나의 연결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한 발자국을 옮겨 걷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걷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춘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몸 전체가 걷는 일에 기꺼이 복무하고자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기 시작해 보라. 우리의 몸은 막 시동을 건 엔진처럼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팔은 발걸음에 맞춰 저절로 흔들릴 것이며, 눈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샅샅이 탐색하며 나아갈 곳을 살필 것이며, 귀는 무한히 열리게 되고,..

[안도현의 러브레터 1]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혹시 영화 ‘일 포스티노’를 기억하시는지요? 거기 등장하는 한적한 바닷가의 배불뚝이 시인이 칠레 태생의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이 시는 그가 세 번째 아내 마틸데 우루티아에게 바친 시 100편중의 일부분입니다. 사랑을 구하기 위해 그 대상에게 시를 바치는 행위는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치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 앞에서는 어쨌든 엄숙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전통이 우리의 머릿속에는 들어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시를 읽으면서 네루다에게 너무 손가락질 하지는 마십시오. 그는 솔직하면서도 진지한 시인입니다. 사랑에 빠져 본 적 있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손에 열쇠 두 개를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쾌락과 고통, 안정과 불안, 용서와 증오, 그런 양면성 모두를..

[안도현의 러브레터 1]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혹시 영화 ‘일 포스티노’를 기억하시는지요? 거기 등장하는 한적한 바닷가의 배불뚝이 시인이 칠레 태생의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이 시는 그가 세 번째 아내 마틸데 우루티아에게 바친 시 100편중의 일부분입니다. 사랑을 구하기 위해 그 대상에게 시를 바치는 행위는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치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 앞에서는 어쨌든 엄숙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전통이 우리의 머릿속에는 들어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시를 읽으면서 네루다에게 너무 손가락질 하지는 마십시오. 그는 솔직하면서도 진지한 시인입니다. 사랑에 빠져 본 적 있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손에 열쇠 두 개를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쾌락과 고통, 안정과 불안, 용서와 증오, 그런 양면성 모두를..

[안도현의 러브레터 1]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혹시 영화 ‘일 포스티노’를 기억하시는지요? 거기 등장하는 한적한 바닷가의 배불뚝이 시인이 칠레 태생의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이 시는 그가 세 번째 아내 마틸데 우루티아에게 바친 시 100편중의 일부분입니다. 사랑을 구하기 위해 그 대상에게 시를 바치는 행위는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치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 앞에서는 어쨌든 엄숙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전통이 우리의 머릿속에는 들어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시를 읽으면서 네루다에게 너무 손가락질 하지는 마십시오. 그는 솔직하면서도 진지한 시인입니다. 사랑에 빠져 본 적 있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손에 열쇠 두 개를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쾌락과 고통, 안정과 불안, 용서와 증오, 그런 양면성 모두를..

질투는 나의 힘, 입속의 검은 잎 : 기형도를 추억하며

기형도 시인은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1994년), 가장 먼저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인입니다. 존경하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주었는데, 제 인생에 커다란 반성과 삶에 대한 애착을 전해준 것 같습니다. 비로소 저 자신에 대해서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고나 할까요. 기형도 시인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질투는 나의 힘, 입속의 검은 잎 : 기형도를 추억하며

기형도 시인은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1994년), 가장 먼저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인입니다. 존경하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주었는데, 제 인생에 커다란 반성과 삶에 대한 애착을 전해준 것 같습니다. 비로소 저 자신에 대해서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고나 할까요. 기형도 시인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질투는 나의 힘, 입속의 검은 잎 : 기형도를 추억하며

기형도 시인은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1994년), 가장 먼저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인입니다. 존경하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주었는데, 제 인생에 커다란 반성과 삶에 대한 애착을 전해준 것 같습니다. 비로소 저 자신에 대해서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고나 할까요. 기형도 시인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