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 3

풍금은 보여주지 않고, 풍금소리를 들려준다는 것.

열세 살에 저는 고향을 떴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지요. 70년대 중반, 대구 변두리의 자취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었고, 그 툇마루는 문 없는 부엌의 싱크대로도 쓰였습니다. 거기에서 제일 먼저 손에 익힌 게 무 생채 써는 일이었습니다. 제 서툰 도마질은 깍… 뚝… 깍… 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방에 사는 새댁이 보다 못해 무 써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소리는 깍둑깍둑깍둑…… 참으로 경쾌했습니다. 지금도 무 생채를 먹을 때면 그날의 도마질 소리가 찡하게 가슴에 스며듭니다. 신경숙 소설의 마력도 그것이죠. 자꾸 찡하게 만든다는 것, 머뭇거리면서도 콕콕 찌른다는 것, 풍금은 보여주지 않고 풍금소리를 들려준다는 것……. 그 여자는 아무래도 그런 일이 서툰 듯했어요. 어머니께서는 한눈을 파시면서도 ..

풍금은 보여주지 않고, 풍금소리를 들려준다는 것.

열세 살에 저는 고향을 떴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지요. 70년대 중반, 대구 변두리의 자취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었고, 그 툇마루는 문 없는 부엌의 싱크대로도 쓰였습니다. 거기에서 제일 먼저 손에 익힌 게 무 생채 써는 일이었습니다. 제 서툰 도마질은 깍… 뚝… 깍… 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방에 사는 새댁이 보다 못해 무 써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소리는 깍둑깍둑깍둑…… 참으로 경쾌했습니다. 지금도 무 생채를 먹을 때면 그날의 도마질 소리가 찡하게 가슴에 스며듭니다. 신경숙 소설의 마력도 그것이죠. 자꾸 찡하게 만든다는 것, 머뭇거리면서도 콕콕 찌른다는 것, 풍금은 보여주지 않고 풍금소리를 들려준다는 것……. 그 여자는 아무래도 그런 일이 서툰 듯했어요. 어머니께서는 한눈을 파시면서도 ..

풍금은 보여주지 않고, 풍금소리를 들려준다는 것.

열세 살에 저는 고향을 떴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지요. 70년대 중반, 대구 변두리의 자취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었고, 그 툇마루는 문 없는 부엌의 싱크대로도 쓰였습니다. 거기에서 제일 먼저 손에 익힌 게 무 생채 써는 일이었습니다. 제 서툰 도마질은 깍… 뚝… 깍… 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방에 사는 새댁이 보다 못해 무 써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소리는 깍둑깍둑깍둑…… 참으로 경쾌했습니다. 지금도 무 생채를 먹을 때면 그날의 도마질 소리가 찡하게 가슴에 스며듭니다. 신경숙 소설의 마력도 그것이죠. 자꾸 찡하게 만든다는 것, 머뭇거리면서도 콕콕 찌른다는 것, 풍금은 보여주지 않고 풍금소리를 들려준다는 것……. 그 여자는 아무래도 그런 일이 서툰 듯했어요. 어머니께서는 한눈을 파시면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