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여는 시 한편

메리 크리스마스 : 박목월 (지금 어렸을 때보다 행복합니다.)

ohmylove 2007. 12. 25. 00:50



메리 크리스마스

박목월    

 

 

  
크리스마스 카드에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ㅡ 네 개의 샛파란 눈동자.
ㅡ 네 개의 샛파란 눈동자.
 
참말로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누굴 기다릴까.
ㅡ 네 개의 까만 눈동자.
ㅡ 네 개의 까만 눈동자.
 
그런 날에
외딴집 굴뚝에는
감실감실 금빛 연기,
감실감실 보랏빛 연기,
ㅡ 메리 크리스마스
ㅡ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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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이 밀려오면,
연탄불을 지피는 집.
그 집에 사는 아버지는
들에서 일하시느라 거친 손을 가졌다.

이웃집에서 홍시 몇개를 가지고 와서는
마당의 눈을 밟으며,
'메리 크리스마스'한다.
아버지들의 아이들은 눈이 아직 녹지 않은 논에 모여
군고무마를 구워먹으며 숯검댕이를 묻힌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은 논으로 가지 않으며,
어른들은 홍시를 들고 아랫집까지 수고하지 않는다.

다만,
숯검댕이를 묻히던 아이들은 이제
두 손에 큼지막한 인형과 꽃, 케익을 들고 초인종을 누른다.

다만,
얼굴 가득 미소,
그것만은 결코 변치 않았다.

가볍지 않은, 행복한 미소 가득,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 어렸을 때보다 행복합니다.

이병하 드림

 


* 이 글은 2003년 12월 24일, 제 639호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