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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 윤동주 시인, 윤동주 생애, 윤동주의 생애, 윤동주 생가, 윤동주 소년, 윤동주 자화상

ohmylove 2011. 12. 30. 00:40

1. 윤동주 시인이 무엇에 대해서 많이 썼나요?

  조국의 어두운 현실을 바라보며 소년다운 순결한 의식과 기독교적 참회의 정신을 많이 썼습니다. 민족시인이라고도 합니다.

 

2. 대부분 어떤 성향을 띠고 있는지요?

  대부분의 시가 일제에 대해 저항적입니다. 물론 동시도 많이 썼어요... 민족의 해방을 기다리며 자신의 부끄럼 없는 삶을 죽을 때까지 잃지 않은 시인으로서 그의 시는 일제 강점기의 종말에 대한 희생적 예언으로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시세계의 정신적 기반으로서 기독교적인 원죄 의식과 종말관이 뒷받침되기도 합니다.

 

3. 대표적인 작품에는 서시 말고 다른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요?

  자화상, 간, 쉽게 씌어진 시, 또다른 고향, 십자가, 별 헤는 밤, 참회록, 병원 등이 있습니다.

 

4. 서시를 해석(? 분석인가...?) 해주세요.

 

  김흥규 교수님의 해설입니다.

 

  이 시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철저하게 양심 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내부적 번민과 의지를 보여 준다.
  앞의 두 행에서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을 말한다. 이것은 인생을 오래 살아본 사람의 달관한 말이 아니다.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어 본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감히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면서 사람이 부끄럼 없이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자신 역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많이 저질렀는지를 알 터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갖가지 그늘과 어둠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사리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세속적 삶에 타협하게 한다. 이 작품의 서두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선언이다. 그것은 젊은이의 순수한 열정과 결백한 신념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더욱이 삶 자체가 치욕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식민지의 상황 아래서 그것은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윤동주는 이에 대해 날카로운 반성의 언어로서 답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그의 괴로움은 자신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생겨난다. 부끄러움이란 잘못을 저질러서만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도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결백한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있어서 부끄러움이란 그의 양심의 뜨거움에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조차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 시가 보다 높은 경지를 이루는 것은 여기에 다음의 넉 줄이 이어짐으로써이다. 밤 하늘의 맑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겠다는 담담한 결의는, 자칫 무모한 번민에 그칠 수도 있는 양심적 자각을 성숙한 삶의 의지로 거두어 들인다. 그것은 극히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결의와 태도를 느끼게 한다.
  별도의 연으로 따로 떨어진 마지막 행은 이와 같은 결의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이미지이다.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했을 때, 이 별의 암시적 의미는 어둠과 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거나 흐려질 수 없는 외로운 양심에 해당한다. 그것은 윤동주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젊은 이성의 상징이다. 바로 이 한 줄이 덧붙여짐으로써 양심의 결백함에 대한 그의 외로운 의지는 어두운 밤 하늘과 별, 그리고 바람이라는 사물들의 관계를 통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다.
 

 

5. 윤동주 시인이 사망하셨을 때가 몇 세이지요?

  생몰연도는 1917~1945.2.16.이니까... 28세입니다...






소년 -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듯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소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1917∼1945. 시인.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아버지는 영석(尹永錫)이며, 어머니는 김룡(金龍)으로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아우 일주(一柱)와 당숙 영춘(永春)도 시인이다. 1931년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대랍자(大拉子) 중국인 관립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학교를 옮겼으나, 이듬해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에 편입, 졸업하였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가을에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귀향 직전에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생을 마쳤다.

교우 관계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함께 하숙 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자필 시집을 보관, 출간한 정병욱(鄭炳昱), 초간 시집에 추모시를 쓴 유령(柳玲), 연희전문학교 후배 장덕순(張德順), 고향 후배 문익환(文益煥) 등이 있다.

처녀작은 15세 때 쓴 시 <삶과 죽음>·<초한대>이며, 이 두 편의 수준이 상당한 것으로 미루어 습작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발표된 작품을 살펴보면 광명중학교 4학년 당시 간도 연길(延吉)에서 나온 ≪가톨릭 소년(少年)≫에 동시 <병아리>(1936.11.)·<빗자루>(1936.12.)·<오줌싸개지도>(1937.1.)·<무얼 먹구사나>(1937.3.)·<거짓부리>(1937.10.) 등이 있다.

연희전문시절에는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연희전문학교 교지 ≪문우 文友≫에 게재된 <자화상>·<새로운 길>, 그의 사후인 1946년 ≪경향신문≫에 발표된 시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다.

그리고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20세를 전후하여 10여 년간 전개된 그의 시력여정(詩歷旅程)은 청년기의 고독감과 정신적 방황, 조국을 잃음으로써 삶의 현장을 박탈당한 동일성의 상실이 그 원천을 이룬다.

초기 시에서는 암울한 분위기와 더불어 동시(童詩)에 깃들인 유년적 평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현실 파악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는 <겨울>·<조개껍질>·<버선본>·<햇빛·바람> 등이 있다.

후기 시로 볼 수 있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에 쓰여진 시들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 감각을 지닌 독특한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준다.

<서시>·<자화상>·<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윤동주의 시는 한마디로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명령하는 바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노래하였다.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역사적 국면의 경험으로 확장함으로써 한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하였다. 동시에 특정한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체험한 것을 인간의 항구적 문제들에 관련지음으로써 보편적인 공감대에 도달하였다. 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고, 1968년 연세대학교 교정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윤동주

참고문헌

尹東柱論(金烈圭, 국어국문학 27, 1964)
先伯의 생애(尹一柱,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정음사, 1974)
한국시에 있어서의 비극적 황홀(金宗吉, 眞實과 言語, 일지사, 1974)
아청빛 언어에 의한 이미지(金賢子, 현대시학, 1974.5.)
尹東柱論(金興圭, 創作과 批評 33, 1974. 가을.)
尹東柱論의 行方(金允植, 心象, 1975.2.)
윤동주 시의 문학사적 의의(金容稷, 나라사랑 23, 1976)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