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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외국인 순교묘역에서 나는 이렇게 회고 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27. 17:16


5월 27일 양화진 외국인 순교묘역에서 나는 이렇게 회고 한다.
문화복지신문은 27일 10시부터 서울시 소재 미 병사 양화진 외국인 순교묘역 미군 장병 묘역행사를 독점취재 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시민 과 한.미 예비역장병 그리고 국내에 거주 하는 미 8군 사령부 장병등 400여명이 모여 엄숙하고 고요하게 진행 됐다.

6월이면 호국의달로 먼저 가신 영령들을 위한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시작 되고 국민들은 의례이 기억하며 차마 지울수 없는 6.25를 상기 할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충위정신 만으로 목숨 바치신 위인들과 국토방위를 지키다 순국하신 위인들과 민주화투쟁으로 앞써가신 영령님들께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가 묵념으로 시작해 스쳐지나간 당시의 일거일동를 회고하며 아직도 마르지않는 눈물 들을 품어 낸다.

6.25발발을 해놓고, 아직도 반성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저들 국토의 분단을 만들어놓고도 그 죄값을 모르는 철면피한 김일성 3대 가에 이제는 용서할수 없다는 움직임이 한,미연합회원들로 하여 응징의 날을 세웠다. 60년이 넘도록 기다렸고 반성의 기회를 주며 전쟁의 아픈상처를 담고 있는 한,미 동지모임을 갖고 서울시 양와진 외국인 순교묘역에서 참배후 지구촌을 향해 응징의 메시지를 날렸다.

이날 지구를 반바퀴나 돌며 찾아온 미주 한인회 회원들과 충남 논산시 양촌읍에서 거주하는 주민들도 그 대열에 끼어 있었다. 동네어귀에서 게임이나 놀이개로 뛰고 놀아야 할 이어린소년들에게
미래의 꿈도 희망도 무참하게 짖밝아버린 그때 실화가 한.미 연합회원모임 현장에서 지금껏 뇌속에서 떠나질 않고 괴롬을 줬던 앙몽들이 녹아내린듯 목이메에 말을 이어가질 못했다. 그중

양화진 외국인 순교묘역 참배를 위하여 지방에서 올라온 이광우(79세) 한.미 친선 연합회회원은 3년이 넘는 전투속에서 당시 잃어버린 전우를 생각하며 한맺은 눈물을 흘리며 먼저간 전우 묘비를 다듬었다.

또 강명식 (73세) 논산시 양촌면 인철리 282번지 농약사는 이렇게 회고 한다.
소방대(고 강원식) 대장으로 면소재지를 사수한 맏형의 신부름을 12살 나이로 첨병 역활과의무관 .환자 이송등을 맡아 피비린내 나는 당시현장은 무어라 형언 할수 없는 지경으로 차마 눈뜨고는 볼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대둔산 고지를 놓고 빨지산 빨갱이들과 전투가 제일 악몽으로 지금도 몸서리쳐진다는 이들의 증언은 현대사에 머물고 있는 우리젊은이들에게 전쟁의 슬픔과 고통은 다시없는 교훈이 될것이라믿어의심치않다. 2000여명이 3년을 넘게 전투는 계속됐으며 낮에는 쫒고 밤에는 후퇴하는 속에 국군1개중대가 희생됐고 경찰80여명이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미군이 지원하는 전투기와 포사격으로 일망타진한 승전보 역사 기록이지만 이때 희생된 전우들의 마지막 죽음의 갈림길은 지금도 이혀지지않는다고 말한다.

문화복지신문 장종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