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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은 건축’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가다 “고“ 정기용씨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3. 12. 13:25


‘삶을 담은 건축’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가다
기적의 도서관 연작·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대표작’


순천 ‘기적의 도서관’,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등을 설계한 건축가 정기용(사진·성균관대 석좌교수) 전 문화연대 공동대표가 11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66.
고인은 서울대 미대를 나와 프랑스로 유학을 가면서 건축으로 전공을 바꾼 뒤 평생 건축의 공공성과 지역성을 추구하며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로 활동했다. 건축물 자체의 미학 못잖게 사회적 의미와 기능을 중시하며 다양한 건축적 실험과 전방위적인 문화 활동을 펼쳤고, 서울건축학교 등 건축계의 대안적 운동에 앞장서서 참여하고 이끌었던 건축계의 중진이었다.

현대 건축이 잃어버린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건축을 지향해 흙을 활용하는 집들을 오랫동안 실험했고, 건축이 도시 전체에서 갖게 되는 기능을 중시해 도시를 문화적이고 생태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한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꼽혔지만 정작 본인은 올바른 방식으로 올바르게 짓는 건축을 추구할 뿐이라며 ‘흙건축의 대가’나 ‘생태건축가’로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주류 건축가로서 서울로 집중된 건축 풍토 속에서 낙후된 지역 건축의 발전과 부흥을 시도한 점이다. 전북 무주의 주요 공공건축물들을 설계한 ‘무주 프로젝트’는 한 건축가와 한 도시가 파트너가 되어 주민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가며 천편일률적인 지역 공공건축물을 새롭게 바꿔낸 드문 작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관이 주도하는 행사가 벌어지면 주최쪽은 그늘이 지는 본부석에서 편안하게 행사를 치르는 사이 참석한 주민들은 뙤약볕 아래 불편하게 있어야 하는 운동장 좌석을 등나무 등걸로 덮어 고쳐 짓고, 목욕탕이 멀어 가장 불편하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면사무소에 공동목욕탕을 마련하는 등 사소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담아낸 이 프로젝트는 건축과 괴리된 지역 도시에 건축의 가치와 의미를 알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순천을 비롯 ‘기적의 도서관’ 연작들은 딱딱한 네모 상자 모양에 책 창고와 교실을 연상케하던 한국 도서관 건축을 바꾼 역작이었다. 건물 외관부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를 추구했고, 내부 공간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굴 같은 파이프 안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엄마와 아이들이 온돌 바닥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 공간을 만드는 등 놀이를 즐기 듯 독서할 수 있는 새로운 어린이 도서관 건축 시대를 열었다.

또다른 대표작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는,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도 짓고 마을에서 주민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다던 대통령의 뜻에 맞춰 아파트처럼 편하게 사는 집이 아니라 옛 농가처럼 채를 나눠 자연과 더 조응하면서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집으로 설계해 유명하다.

지은 책으로 <사람·건축·도시> <서울이야기> <감응의 건축>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희경씨와 아들 구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7시다. (02)2072-2018.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