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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한국인 최창준씨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2. 27. 20:34


미국에서 우연하게 만남이 이뤄졌던 최창준 해외홍보위원장은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정감이 가게 한다. 그의 일하는 모습과 열정이 남다르고 남을 위한 배려함이
너무 순수하기에 미국LA 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만남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를 이해하며 부모와 자식 같은 사랑으로 교민 들을 대한다.
7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도 그에게는 숫자에 불과하다. 미국인의 회사에 출근하며 격일근무에 남는 시간을 자원봉사로 일관한 그는  연신 행복에 젖어살고 있다.
년중 휴가를 받아 약속이나 한‘듯 자원봉사 일을 척척해낸다. 한국을 방문해서도 최창준씨는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나서 그간의 그리운 정을 나누곤 한다. 지나간 세월 속에 잊을법도 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채워주듯  대신 자리하고 있다. 때론 표현 없는 느낌으로 역정도 내지만 그래도 만인들이 그를 존경 한다.
최창준씨는 훌륭한  아들이 박사로 있으며 며느리는 이름만 들어도 만인이 아는  유명한 서울명문대학교 성악가 교수 이다.

자녀의 앞선 교육을 위해 일찍이 머나먼 미국행을 선택한 최창준씨는 오로지 자식의 교육을 위해 헌신한 것을 단 한번도 후회한번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민을 택했던 꿈이 자식으로 하여 현실에서 성공한 사례가 되었던 것 만큼 제일 행복한 일이외다.하면서 껄껄껄 웃음으로 대변한 최창준씨는 또 다른 재미있었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하지만.
건강이 있었기에 현실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고. 언제나 행복함에 감사하며 명랑함은 물론 모든 한인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지낸다고 한 그는
손수모범을 보이며 솔선수범과 매사에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며 본인의 삶을 유지시킨다는 아름다운 말을 들려주기도 한다.  
낮‘설은 미국에서의 생활도전이란 그리 쉽지는 않았을 터’
우리교민들이 미국사회에서 자리 잡고 행복한 삶을 영유하기 이전에 본인이 처음 이민을 한 당시만 해도 그 시절 그때는 문화와 기후 풍토가 너무나도 다른 이민생활이었다고  회고한다. 또 하나의 고통과 시련이
연속 이었다면서 참으로 말로 다 헤아릴‘수 없었다는 최창준씨의 말이다.

어려운 곤경에 있을수록 서로를 감싸고 포용하며 관용과 미덕을 웃‘사람, 아랫사람들에게 나눠 줄‘수 있는 사회가 꼭 필요 하다고 강조 한다.
미국사회에서 살면서 취미로 방송 영상제작과 한인의 소식을 전 미주 한인들에게 보내는 역활이 뭐가 그리 대단 했냐구?  반문하기도 한 그는  본인이 한 자원봉사가 한국인으로서 애국하는 일이다고 하자 펄쩍뛴다. 그러나 묵묵히 해온지 어연 35년이 흘렀다고 하니 정말 대단 하다.

최창준씨는 한인으로서 현재  LA 평통위원이며(홍보분과 위원장)
2008년 10월 4일 사단법인 문화예술진흥협회 이사겸 해외홍보위원장으로 위촉되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내 한국인의 문화예술과 한인들의 소식을 담아 본지 와 인터넷신문사이트 문화복지신문에 기사화 하고 있다.  
그간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사단법인 문화예술진흥협회 와 문화복지신문사는 최창준씨의 그간 자원봉사의 값진 업적과 공적을 기리며  21세기를 열어가는 자랑스런 한국인 수호천사로 선정 그 기쁨을 함께 나눈다.
최창준 해외홍보위원장의 무궁한 발전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민족의 혼이 함께 살아 숨쉬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문화복지신문  www.cwntv.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