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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이념도 민심역행하면 소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9. 07:51


“아무리 좋은 이념도 민심역행하면 소멸“

[긴급진단2] “10년 이어온 정통보수 한나라당에 국민적 기대 크다“

    

돌이켜 보면 10년이 넘는 장수정당인 한나라당은 지난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탄생된 민주자유당을 원조로 하고 있다. 당시 시대상황은 1987년 개헌이후 명확한 이념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노태우 정부가 다양하게 폭발되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할 수 없었고 차기정권을 이어갈 2인자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계개편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당초 영입대상은 1987년 대선에서 2위로 낙마한 뒤 전열을 재정비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그러나 DJ는 당시 합당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고 밝혔고 대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손을 잡고 ‘보수대연합’이란 기치로 3당 합당을 선언하며 정치권에 파란을 일으켰다. 보수대연합은 사실상 일본의 집권당이던 자민당의 탄생과정과 독일의 보수연정을 연상케 하는 일대사건이었다.

그러나 이후 당내 2인자인 YS와 미묘한 갈등관계로 민자당을 탈당한 JP계가 자민련으로 독자행보에 나서고 이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당명은 신한국당으로 바뀐다. 이 때부터 자유무역의 대세와 함께 글로벌 무한경쟁과 자유시장 경제로 변화되는 경제에 대한 ‘신한국’이란 구호가 구체적인 新보수주의 이념이 제시됐다.

이와 관련, 한 정계원로는 “국제무역의 WTO체제로 이행과 시장개방의 파고가 드높았던 시대에 맞는 이념이 필요했다”며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시대와 민심에 역행하면 소멸이 불가피하다. 당시 ‘신한국’, ‘신경제’란 이념적 용어는 이때 상황에 맞춰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화를 거쳐 문민정부를 건설한 YS와 민주계는 경제질서의 재편과 세계적인 자본주의화 물결에 맞춘 ‘신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일성의 생전 남북한 대치로 한반도에선 냉전이 여전했으나 세계는 1991년 공산주의세력의 종주국 소련의 붕괴와 독일통일, 동구권 공산체제 전복이 급물살을 타면서 국내 보수진영은 김일성 독재체제를 놔둔 채 서서히 진전되는 남북관계 개선에 불만을 갖게 된다. 이후 핵개발을 추진하던 김일성이 죽고 아들 김정일이 뒤를 잇자 한반도 내 위기는 고조된다.

지난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이 같은 우려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비핵화를 운운하고 남북화해 필요성을 역설한 주장은 일시에 잦아들게 되며 북한 핵무장 시도문제는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골칫거리로 거론됐다. 이 와중에 보수진영은 민주화 과정에서 흐트러진 한미동맹을 확고하게 다질 당위성과 적대적인 대북관 확립을 주장하고 나선다.

그러나 민주화-문민화에서 정당성을 찾던 YS정부는 신한국당의 명확한 이념적 논의 없이 애매한 논리를 들어 보수진영의 비난을 촉발시켰고 외환위기 대처에 무능함을 드러내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YS정권 탄생의 숨은 주인공이던 JP는 이후 DJP연합을 통해 DJ 정권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했으나 끝내 배신당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별하게 된다. 이때 남다른 정치권의 쇄신 분위기 속에 등장한 신흥 보수정당 한나라당이 현재 우리가 신문 1면-정치면에서 매일같이 접하게 되는 집권여당인 바로 그 한나라당이다.

다만 한나라당의 출현은 당시 민주계 주류세력과 민정계, 새롭게 등장한 이회창 총재 측근세력이 뒤엉켜 제대로 된 이념노선 논쟁이 이뤄지진 못했다. 이 와중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며 이후 10년간 좌파세력 집권의 기반을 이루게 된다.

사실 정치학에서 논하듯 엄밀히 따지면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이념적으론 보수정당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들은 6.25 한국전쟁이후 명확한 대북관과 좌우익에 대한 관점을 통해 반공을 내세운 집권여당이던 자유당과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보수우파 정당으로 인식한다. 반면 5.18이후 야당생활을 하며 보수노선에서 이탈해 좌향좌를 해온 구 민주당계보를 잇는 정당들을 좌익 내지 진보로 생각하는 관념이 형성돼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보혁 및 좌우구도와 영호남 지역갈등이 상존하는 현 정치상황과 맞닿아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 정부에서도 중요한 과제가 돼왔으나 과감한 해결책은 묘연했다. 현재도 정치권에서 논의 중이나 앞서 역대정권 모두 개헌논의나 정계개편, 선거구제 개편도 논의했고 수도이전 및 인재등용의 균형화에 대한 활발한 토론도 이뤄졌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구심점으로 등장한 한나라당은 이회창 전 총재의 독단에 따른 당내 민주화 문제와 연이은 정권교체 실패로 국민들의 실망감만 안겨줬고 대선자금 비리로 인해 당 해체의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고난이 이어지게 된다. 이후 등장한 박근혜 전 대표의 맹활약은 노무현 정부를 압박하는 대안세력이자 보수세력을 결집 가능성을 보여줬고 전통보수의 기치를 앞세운 한나라당의 재정립이 시대적 과제로 급부상한다.

또한 공공연한 反기업 정서와 정체성의 혼란은 좌파정권 집권기 10년 내내 계속됐는데 종종 ‘재벌해체론자’들이 관료로 등용되거나 대북 유화정책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친북인사들의 득세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반공과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건국과 경제개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 보수이념과 민주화를 통해 이룩된 다양한 성과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한나라당의 이념이 제시된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선 노골화된 친북 좌편향 정책들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국민적인 반발 속에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를 뒤에서 추동한 것은 다름이 아닌 보수우파의 이념이었다. 좌파정권의 탄압과 억압 속에 길거리의 외로운 목소리가 2007년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에 결집되면서 결국 국민들은 보수정권의 탄생에 박수를 보냈다.

여기까지가 2008년 이명박 정부 탄생의 결정적인 배경이자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만들어온  보수우파 이념이 거쳐 왔던 길이다. 이념은 시대정신의 반영이자 정권의 정당성을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고 또한 국내외에게 각인시키는 가장 중요한 기제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현재 급부상한 한나라당의 정체성 논란은 정치개혁보다 더 ‘뜨거운 감자’일수밖에 없다. 또한 이것이 “10년여를 이어온 정통 보수정당으로서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갖게 만드는 것”이란 한 정계원로의 말과 맥락이 닿아있다고 생각된다. <다음지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