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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시진핑 발언 파문’ 확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30. 11:21


한·중 ‘시진핑 발언 파문’ 확산

“한국전에 대한 중국의 복잡한 입장 인식부족 탓”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지난 25일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언급한 발언이 한국과 중국 양국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외교부가 다음날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계속 노력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하자, 중국 외교부가 28일 “시 부주석의 발언은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옹호하고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

파문이 확산되면서 일각에서는 시 부주석의 발언이 ‘6·25 남침설’을 부정하고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복잡한 입장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시진핑 부주석 발언은 서로 미묘하기 때문에 오해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전쟁을 ‘내전으로서의 6·25’와 ‘항미원조’ 등 2개의 전쟁으로 구분하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전쟁은 항미원조전쟁의 다른 이름이다. 1950년 10월19일 압록강을 넘은 중국 인민지원군은 이후 미군과 6차례의 대규모 전역(戰役)을 벌이며 모두 18만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시 부주석이 말한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서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란 인민지원군의 6·25 참전 이후를 지칭한다.

중국 정부는 6·25 참전을 ‘항미원조전쟁’이라며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데 반해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이전의 전쟁은 ‘내전’으로 분류하며 언급을 자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쟁을 일으킨 주체에 대한 복잡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한·중 수교 전까지만 해도 북한 주장대로 ‘6·25 북침설’을 채택했으나 2000년을 전후해 이를 철회했다. 그렇다고 ‘남침’을 명시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1950년 6월25일 조선에서 내전이 폭발했다’로 6·25전쟁을 ‘중립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달리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남침’이 정설이다. 중국의 한 역사학자는 “1990년대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6·25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중국의 학자들도 남침을 수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민감한 문제를 회피하지만,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사례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6·25를 내전과 항미원조전쟁으로 구분하는 것은 역사 해석의 문제다. 그럼에도 미군의 6·25참전 등 한·중 양국의 인식의 간극은 크다.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한국전쟁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데서 발생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한국전쟁은 양국 정부 차원에서 다뤄질 문제가 아니고 학술 연구를 통해 성과를 공유해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중국 교과서가 ‘북침설’을 철회한 것은 양국간 교류·협상이 아닌 6·25 연구성과가 축적된 결과였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