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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기적의 주인공!“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21. 12:53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기적의 주인공!“

기사입력 2010-10-21 10:02:49




신체장애 딛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김해영씨
집안 어려워 10대에 식모살이하다가 편물 배워
세계 최고 기술 인정받고 아프리카서 13년 봉사
작년에 美서 석사… “이젠 부탄에 학교 세워요“

스스로 세상을 등진 아버지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던 어머니, 가난한 집 5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 척추장애 때문에 몸이 불편한데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떠밀리듯 했던 식모살이….

어릴 적 김해영(45)씨에게 세상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해 보였다. 지독하게 '운'도 없는 유년을 거친 그가 올 5월 미국 명문인 컬럼비아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생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그가 또박또박 말한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다는 희망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가정불화를 못 이겨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김씨가 열세 살이던 1979년 3월. 충격에 빠진 어머니는 김씨에게 화풀이를 시작했다. 점점 과격해지는 어머니의 행동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소녀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칼을 들고 같이 죽자며 저를 쫓아오는 거에요. 그때는 정말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도망쳤어요.“

79년 여름 가출 아닌 가출을 한 김씨는 월급 3만원에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고역이었다. 한평생 식모살이로 살기 싫었던 그는 무작정 서울종합직업훈련원(현 한남직업전문학교)에 편지를 써 옷감 짜는 일을 배우는 편물(編物)과에 입학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정말 악바리처럼 배웠어요. 졸업 후에는 경기 용인시에 있는 편물공장에 취직해 하루에 14시간씩 일했죠.“

죽어라 일했더니 편물 기술이 일취월장했다. 83년엔 전국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세상이 인정하는 성취를 이루자 가족이 그리워졌다. 슬그머니 서울 용산구의 자신이 살던 집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는 돌아온 딸 앞에서 과거행동을 사과했다.

가정까지 안정되자 김씨의 실력은 날개를 달았다. 85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기계편물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한 것.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일본의 한 편물회사 한국지부에 취직하는 등 순탄한 생활을 이어갔다.

호사다마라고 앞만 보고 달려오던 그는 어느 날 과로로 쓰러졌다. 의사는 장애도 있는데 더 무리하면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고 경고했다. “그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게 무너지는 느낌. 그래서 사회봉사에 눈을 돌리게 됐죠.“

90년 1월 한 선교단체를 따라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있는 '굿호프 직업학교' 편물교사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가 보츠와나에서도 가장 황량한 지역에 세워진 탓에 94년에는 자원봉사자가 김씨 혼자만 남았을 만큼 열악했다.

그래도 김씨는 학교를 세운 선교단체에 폐교만은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그의 진정성을 본 선교단체는 폐교 대신 김씨에게 교장 자리를 맡기는 선택을 했다. 학교는 김씨가 떠나기 직전인 2003년 학생이 60명에 이를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의 인생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좀더 전문적으로 사회봉사를 해보겠다는 욕심 하나로 2003년 12월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2004년 9월 뉴욕의 나약(NYACK)칼리지에 입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지난해 8월에는 컬럼비아대 사회복지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해 올해 5월 졸업했다. “십년 넘게 자원봉사만 했더니 모아 놓았던 돈도 다 쓰고 없더라고요. 그래서 공부할 때는 무조건 장학금을 받아야 했어요. 자연스럽게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김씨는 남아시아의 부탄에 직업학교를 세우기 위해 22일 출국한다. 부탄 섬유협회에서 김씨의 이력을 보고 초청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편물기술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꿈과 희망을 주고 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얼마 전 가정형편에 따라 국내 아이들이 꿈꾸는 진로도 차이가 난다는 뉴스를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