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 말기 암 환자들 사진 전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21. 09:40


죽음 앞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


말기(末期) 암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 대구시 서구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는 이곳에 머물다 삶을 마감한 말기 암 환자들의 따뜻한 미소와 웃음 띤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다. 과하지도 않고, 억지웃음도 아니다. 암 투병에 지친 육신이 천상(天上)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짓는 '지상(地上)에서의 마지막 웃음'이다.

암 환자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순응(順應)의 미소'로 바꾼 이는 이곳 호프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아줌마 의사'로 불리는 김여환(45) 소장이다. 그는 말기 암 환자들의 밝은 모습을 수시로 카메라에 담는다. 진료를 보다가도 병동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카메라를 들고 뛰어나간다. 있는 그대로의 순간 포착이다.

“처음엔 영정 사진 찍는 줄 알고 카메라 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어요. 그렇다고 일부러 웃게 하는 것은 잔인한 짓이죠. 제가 먼저 웃었어요. 그렇게 되면 같이 웃게 되니까요. 그런데 환자들이 자기가 웃은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라는 거예요. 자신에게 이렇게 밝은 모습이 나올 줄 몰랐다는 거죠.“

웃는 사진의 효과는 강력한 모르핀(마약 진통제)보다 뛰어났다. 김 소장은 환자 한두 명의 웃는 모습을 인화해 본인 허락을 받아 병동에 걸었다. 그러자 암울했던 호스피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카메라만 보면 손사래를 치던 환자들이 먼저 웃으며 다가왔다. 삶을 마감하며 가족들에게 웃는 모습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난소암으로 생을 접은 엄마가 해외유학을 마치고 직장에 취직한 외아들에게 띄운 '애틋한 미소', 담낭암으로 세상을 등진 남편이 2년간 병시중을 든 아내에게 보내는 '아련한 웃음', 자궁암으로 먼 곳에 간 어머니와 딸의 '다정한 미소' 등 40여명의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의 웃음과 미소가 영원히 정지된 모습으로 남았다.

가정의학 전문의인 김 소장이 사진 찍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모르핀을 써가며 환자들의 통증을 줄여줬지만 뭔가 허전했다.

“감성적인 접근 없이는 삶의 마지막이 따뜻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호스피스는 죽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곳이다, 이런 것을 보여주자, 그래서 웃는 모습을 담기로 했죠.“

김 소장은 자신의 생각에 동조할 전문 사진사를 찾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그가 고가(高價)의 전문가용 사진기를 사들이고 촬영 기술을 배웠다. 환자들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2주일 정도지만 그 시간만큼이라도 즐겁게 지내게 하기 위해 수예·요리·음악 등 문화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거기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미소와 웃음도 가미됐다.

김 소장은 “호스피스 병동에 노래방 기계가 비치된 곳은 이곳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 애창곡은 '노란 샤쓰의 사나이'다. 그는 환자의 웃음이 렌즈에 잡힌 날은 퇴근하며 즉석 사진 인화가 가능한 대형마트에 들른다. 인터넷으로 사진 인화를 주문하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 환자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24시간이 우리에게는 하루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는 1년이나 다름없어요. 마지막 삶의 밝은 모습을 하루라도 일찍 보여 드리고 싶었죠.“

처음에 사진 찍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던 가족들도 웃는 사진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평생 웃지 않던 과묵하신 아버지가 웃었다니 기적 같은 일이라고 고마워한 아들도 있었습니다. 환자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영정 사진으로 쓰겠다며 사진을 가져가지요.“

오늘(9일)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위한 국제네트워크가 정한 '세계 호스피스의 날'. 김 소장이 담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웃음' 사진 30점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호스피스 캠페인 사진전에 전시된다.

☞ 호스피스(hospice)

말기 암 등으로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통증 관리, 영양 공급 등 의료적 처치와 영적 돌봄, 위안을 제공하는 활동. 전국에 호스피스·완화의료 기관은 50여개가 있다.


-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