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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북핵 협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랜드바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7. 23:27


이명박 정부의 북핵 협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랜드바겐’(일괄타결안)이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MB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6자회담 재개시 그랜드바겐에 따라 협상에 임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장관 대행은 10월 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향후 6자회담이 재개되면 합의와 번복을 거듭해왔던 과거의 협상 패턴을 탈피, 그랜드바겐 구상에 따라 북한의 불가역적 비핵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선 9월 15일에도 MB 정부 대외정책의 실세로 평가받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우리 정부가 제안한 비핵화 그랜드바겐에 북한이 응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MB 정부가 ‘그랜드바겐’에 강한 집착을 내보이면서 6자회담 재개시 이 전략의 유용성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랜드바겐’(grand bargain)은 2009년 9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서 밝힌 구상으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해법을 지양하고 한 방에 문제를 풀자는 ‘원 샷 딜’을 골자로 한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당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한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둔 채, 핵 동결에 타협하고 이를 위해 보상하고 북한이 다시 이를 어겨 원점으로 회귀하는 지난 20년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발언 사흘 후에 “비핵화까지 1에서 10까지의 단계가 있다면 이를 다 묶어서 협상해 합의하자”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북한의 패턴을 종식시킨다?

외교통상부가 국정감사 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그랜드바겐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점진적ㆍ부분적으로 합의하는 방식”이 아닌 ‘원 샷 딜’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합의에는 조치 순서 및 시간계획이 포함되며, 합의는 한 번에 이루고 이행은 합의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음으로 “큰 행동 대 큰 행동”을 바탕으로 ‘통 큰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북핵 폐기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의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들과 5자의 상응조치들(대북안전보장, 관계정상화, 경제지원 등)을 단일 합의로 타결하겠다는 구상”을 의미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북한 비핵화 조치의 “불가역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MB 정부는 북핵 폐기의 불가역성이 협상의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비핵화 조치들은 처음부터 불가역적 조치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핵폐기 결단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 무기급 핵물질과 5MWe 원자로·재처리 시설·핵연료 제조 공장 등”을 설정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그랜드바겐은 ‘통 큰 주고받기를 통해 대타협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의 밑바탕에는 합의와 결렬을 반복하면서 핵무장 능력을 키워왔다는 ‘북한의 패턴’을 종식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랜드바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MB 정부가 이처럼 그랜드바겐에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이 구상이 향후 6자회담을 비롯한 핵협상에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구상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미국조차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협상 상대인 북한은 ‘선(先) 핵폐기’에 불과하다며 일축한 바 있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도 핵협상의 기본을 망각한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그랜드바겐을 일축하기에는 두 가지가 걸린다. 하나는 핵협상에서 상당한 위상과 지분을 갖고 있는 MB 정부가 이 구상을 ‘신주단지’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6자회담과 북미대화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중요성도 대단히 높아졌다는 점에서 MB 정부의 선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커졌다.

또 하나는 그 명칭과 의도가 어떠하든, 내용적으로는 그랜드바겐이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은 물론이고 북한의 전략과도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이다. 작년 2월 중순 동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폐기 준비를 한다면,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대규모의 경제·에너지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통 큰 타결’을 제안한 바 있다. 그랜드바겐은 우리말로 ‘일괄타결안’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일괄타결안은 북한이 지난 20년간 고수해온 핵문제 해결 원칙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그랜드바겐은 유력한 핵문제 해법으로 부상할 수 있다. 물론 그랜드바겐의 성공을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 구상을 크게 수정/보완해 실현가능한 해법으로 가다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크게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는 9.19 공동성명의 연장선상에서 이 구상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랜드바겐이 처음 나왔을 때 미국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핵심적인 이유는 MB 정부가 9.19 공동성명 및 그 이행계획들인 2.13과 10.3 합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MB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9.19 공동성명은 완전한 합의는 아니다. 의향서 수준이다. 이행 로드맵(road map)이 없다. 또 2.13 합의도 완전한 합의는 아니다. 앞으로 합의는 비핵화의 시간표도 넣어야 한다”는 발언 속에 잘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9.19 성명의 1, 2단계 이행 조치인 2.13 합의와 10.3 합의에는 이행 로드맵뿐만 아니라 ‘시간표’도 나와 있기 때문이다. 2.13 합의에서는 9.19 공동성명의 “초기 조치들이 향후 60일 이내에 이행”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합의 이행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지연되었다가, 2007년 9월 완료됐다. 뒤이어 나온 10.3 합의에도 2007년 12월 31일까지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와 핵 신고서 제출을 완료하고, 관련국들은 100만톤의 중유를 지원하고 미국은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종료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핵 신고서 제출을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과 중유 지원 및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으로 이행 시한을 넘겼다가, 북핵 검증을 둘러싼 갈등이 역류 현상을 일으키면서 완료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행 중단된 10.3 합의를 완료하는 것은 그랜드바겐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입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동시 행동 원칙’에 따라 그랜드바겐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랜드바겐이 ‘선 핵폐기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외교통상부는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불가역적인 조치들과 그에 상응하는 5자의 조치를 ‘큰 행동 대 큰 행동’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합의한다는 것이므로, 선비핵화 요구라고 보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실은 선비핵화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먼저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안보리 제재 해제는 안보리 결의에 규정된 대로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야 안보리에서 검토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평화협정 협상은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한 비핵화 과정에 진전이 있으면”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6자회담 재개뿐만 아니라, 북한의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대북 제재 해제 및 평화협정 논의 등도 북한의 선 비핵화 진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경직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그랜드바겐 추진을 저해하는 ‘엇박자 행보’를 멈춰야 한다. 그랜드바겐에서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는 ‘원 샷 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뢰 구축이 대단히 중요하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상호간의 근본적 요구를 교환하고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MB 정부 출범이후 전가의 보도처럼 거론되고 있는 ‘북한급변사태론’은 이러한 맥락에서 대단히 비생산적이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무력흡수통일을 추진하겠다는 5029는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를 무장해제시켜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불신을 증폭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오고 있고, 그 결과 북한은 ‘핵 억제론’에 더더욱 집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핵화를 목표로 그랜드바겐을 주창하고 또 한편으로는 북한급변사태론을 거론하면서 무력흡수통일을 추진하는 듯 한 태도가 바로 그랜드바겐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셈이다.

  .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