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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서 담배 피우지 말라” vs “집에서도 못 피우면 어디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9. 7. 01:44


이달 초, 서울 은평구 수색동의 한 아파트에서 담배 연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 7층에 사는 장모(27)씨의 베란다 창문을 통해 담배 연기와 담뱃재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연기의 '진원지'는 위층이었다. 장씨는 창 밖을 향해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인터폰이 울렸다. 위층 주민은 “내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왜 소리를 지르느냐. 기분 나쁘다”는 것이었다. 장씨가 “정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화장실 송풍구에서 피우라”고 권유하자, “그건 우리 부모님이 싫어하신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두 사람의 말다툼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장씨는 “우리 집에는 흡연자도 없는데 옷과 소파, 이불에 담배 냄새가 뱄다. 기관지가 약한 어머니는 지난달 내내 감기를 앓았다”고 하소연했다.

장씨의 불만이 더 컸던 이유는 이 아파트가 서울시가 추진한 '금연아파트' 캠페인에 참가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간접 흡연을 막자는 취지로 2007년부터 50% 이상의 찬성을 얻어 금연아파트 사업을 진행 중이며, 현재 150여 개 아파트 단지가 참여하고 있다. 사업 내용은 동별로 자율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스티커 등으로 홍보활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씨의 사례처럼 '피하는 자'와 '피우는 자'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진짜 금연아파트 나올까=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이 늘면서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새 국민건강증진법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새 국민건강증진법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실외 금연구역을 지정해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버스정류장·거리·도서관·공원 등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하지만 금연구역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간접 흡연을 피하려는 사람들은 금연구역을 더 확대하려 하고, 흡연의 자유를 누리려는 사람들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조례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아파트의 놀이터나 각 가구도 금연구역이 될 수도 있고, 제외될 수도 있다. 아파트 전체가 금연구역이 될 경우, 법적인 '금연아파트'가 등장하는 셈이다. 서울시 신차수 주무관은 “아파트의 경우 단지 내 공공장소인 주차장·놀이터 등은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지만 각 가구까지 포함시킬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국담배소비자협회 홍성용 사무국장은 “집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흡연자는 아파트 안팎으로 담배를 피울 곳이 전혀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시는 6일부터 2주간 전국 229개 금연아파트 단지의 운영 현황과 문제점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앞서 서울시가 지난해 만19세 이상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아파트가 PC방이나 공원·택시 안보다도 간접 흡연 노출이 심한 곳으로 조사됐다.

서울시는 해외 사례도 분석 중이다. 영국에서는 지난 2월부터 건물 입구까지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캐나다에서는 올해 9월부터 200여 개 공원과 18㎞에 이르는 해변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뉴질랜드와 미국 알래스카 등에서는 술집 흡연도 금지하고 있다.

◆흡연자 vs 비흡연자 갈등 커질 듯=서울시 관계자는 “자율적인 금연아파트에서도 흡연자들의 반발이 크다”며 “과태료를 부과하게 되면 흡연자들의 반발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금연 아파트 인증을 신청한 서울시내 187개 아파트 중 15곳이 주민 절반의 동의를 얻지 못해 중도 탈락했다. 2007년과 2008년에 인증을 받은 63개 아파트 중 6곳도 재인증 심사를 포기했다. 올해 3곳에서 금연아파트 인증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 광진구 보건행정과 배명희 주무관은 “흡연자들의 반발이 거세다”고 말했다. 반면 금연아파트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도 늘고 있다. 올 들어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180여 곳이 금연아파트 인증을 새로 추진하고 있다. 단지별로 마련된 아파트 입주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임신한 몸으로 애들과 자는데 창문으로 들어온 담배연기에 숨이 막혀 깼다”는 식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복지신문
김 남 선 (kns7724@capa.or.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