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한달 소득 30만원 은퇴자는 울고 싶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9. 4. 03:12


한 조기퇴직자가 월요일 오전 서울 서대문역 앞 벤치에서 구직 관련 책자를 뒤적이고 있다

직장은 일찍 잃고… 연금은 못 받rh,  고장난 '복지의 시계'

은퇴시기는 빨라지고 돈 벌어야 할 기간은 오히려 더 늘어나는데 복지는 60세 돼야 시작   “나도 건실한 가장이었는데… 40대 후반에 갑자기 닥친 명퇴

애들 학교 보내느라 퇴직금 야금야금 까먹고… 몇년 후 받게 될 연금은 60만원  아내에게 손 벌리기도 이젠 미안해…

내 50대가 이렇게 무너지면 예순, 일흔이 되면,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중소 무역업체에서 일하다 53세에 퇴직한 오두석(가명·59)씨. 은퇴 직후 그의 두 손엔 2000여만원의 퇴직금이 전부였다. 연금을 받으려면 7년을 더 기다려야 했고,
당장 호구지책이 궁했다. 먼저 퇴직한 선배를 따라 정수기 방문 판매사원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돈도 벌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만 잃었다.
한 달에 30만~40만원을 겨우 버는 달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일찍 퇴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죠. 수입은 없는데 아이들 학교며 돈 쓸 일은 왜 그리 많이 생기는지….“

닥치는 대로 고용노동부나 지자체가 여는 취업 알선 박람회며 취업센터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발에 땀 나도록 찾아다닌 재취업 교육도 허탈할 뿐이었다.
오씨는 “실질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갔더니 자기소개서·이력서 작성법을 가르치거나 심리치료·자아발견 등 뜬구름 잡는 프로그램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나올 월 60만원의 국민연금을 학수고대한다.

중견기업 임원에서 2년 전 퇴직한 김모(54)씨는 직장생활 내내 꼬박꼬박 붓던 국민연금을 타려면 아직 6년을 기다려야 한다.
사업을 하려니 퇴직금마저 날릴까 겁 나고, 재취업을 하자니 누구도 50대 구직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김씨는 동창회에 나간 지 1년이 넘었다.
외출하려면 차비에다 회비라도 몇푼 필요한데, 아내에게 돈 타기가 눈치가 보였다. 그는 “인맥이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며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소용이 없다“면서 “50대 은퇴 이후에도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안전장치가 이렇게 부실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고성장 시대를 이끌어온 주역들이 조기 은퇴와 고령화라는 거대한 두 흐름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각종 노후복지 시스템은
미흡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시계(時計)도 '60세 이후'에 맞춰 있다. 개발시대 만들어진 '정년 60세'의 관성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석상훈 박사가 공적 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55세 이상 은퇴자들의 개인소득(근로소득, 금융이자·소득, 자녀에게 받는 용돈 등을 다 합친 것)을 조사한 결과
월 소득은 평균 30만원에 불과했다. 55세 이상 은퇴자의 4분의 3은 연금 혜택을 못 받는 상태에서 소득도 월 30만원에 불과해 자립하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조사대상인 상당수 여성이 은퇴 후 전업주부가 돼 실소득이 제로(0)인 점이 전체 평균 소득을 끌어내린 측면도 있지만, 50대에 실직 후 재취업을 못하고 복지 지원도 못 받은 채
사실상 '백수'로 여생을 이어가는 숫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실업보험 등 실직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50대 이후 은퇴자들의 삶은 한층 고달프다.

군 제대 후 25세에 태권도장을 차려 25년간 운영했던 자영업자 이삼국(61)씨는 연금을 작년부터 받지만 수령액은 겨우 월 29만원이다. 국민연금 도입 초기에는 자영업자들 사이에
연금 불신이 워낙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최소 금액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나마 29만원이라도 받아 다행“이라며 “자영업자는 직장인들에 비해 재교육이라든지,
재테크 등 노후 준비에 더 뒤처져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자 대기업을 다니다 50세에 명예퇴직한 심재명(51)씨는 올 4월 한방카페를 창업했다.
주변에선 창업의 위험을 들어 만류했지만 당장 퇴직 후 몇달 쉬는 동안 저축 잔고가 팍팍 줄어드는 것을 보니,
막막한 재취업에 계속 미련을 두느니 창업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1억원을 투자했다. 아직 대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인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은 더 벌어야 한다.
60세가 되면 국민연금이 80여만원 정도 나와 조금 여유는 있겠지만, 지금은 생활비 부담으로 개인연금 납입금도 몇 달째 밀려 있다.

윤충식(가명·65)씨는 연봉 1억원의 공기업 임원이었지만, 8년 전(57세)에 32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 후 인생은 급전직하했다.
재취업은 안 되고, 그나마 나오는 일자리는 경비원이었다. 직장생활 중에 들었던 연금도 나오려면 3년이 남았다.
그러는 사이 여섯 식구 의식주(衣食住) 해결에만 한 달에 최소 200만~300만원이 나갔고, 1년에 두 번 돌아오는 대학생 자녀 학비가 1000만원을 넘었다.

중간 정산 이후 남은 1억원가량 되던 퇴직금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60세가 돼 받기 시작한 국민연금은 월 60만원이다.
윤씨는 “일생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에 직장을 잃고 소득마저 급락하니 삶 자체에 회의마저 든다“고 했다.


문화복지신문

김 남 선 (kns7724@capa.or.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