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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없는 다문화 거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5. 27. 07:22


“외국인이 없는 다문화 거리”

서울 종로3가 국민은행 앞길에서 10년간 떡볶이 장사를 해 온 ‘이모네’ 할머니(63)가 낙원동 파고다공원 옆 ‘다문화 거리’로 노점을 옮긴 것은 지난달 29일이다. 관수동 ‘빛의 거리’나 원남동 ‘만물거리’보다 목은 더 좋다고 했지만 여전히 떡볶이는 팔리지 않는다. 예전엔 하루 30만원을 파는 날도 있었지만 여기선 5만원도 손에 쥐기 힘들다. 유동인구가 뚝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필리핀·태국·베트남 등 외국음식을 파는 노점을 만들기로 한 종로구 낙원동 ‘다문화 거리’에 26일 떡볶이·순대볶음 등을 파는 노점들이 늘어서 있다. | 강윤중 기자


지난 25일 찾은 할머니의 노점 앞 건물에는 ‘처음 약속은 어디 가고 영세상인·노점상인 싸움 붙여놓고 구경하는 서울시·종로구야 너희들이 공직자냐’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파리 날리는 날이 늘면서 주류 면허도 없이 막걸리·소주를 파는 노점까지 생겼다.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는 탑골공원 동문쪽은 쓰레기와 토사물로 덮여 있었다.

다문화 거리에는 올 들어 종로3가의 노점 87개가 옮겨왔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당초 이 거리에 필리핀·태국·베트남 등 외국음식을 파는 노점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 2~3월 노점상인들에게 요리강습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거리에서 영업 중인 노점 73곳 중 떡볶이·순대볶음 가게가 52곳(71%)에 달했고 풀빵·쥐포 노점과 잡화점도 16곳(21%)을 점했다. 베트남 음식을 팔던 노점 한 곳이 등장했다가 하루 만에 접었다고 했다. 종로구는 지난해 6월·11월 낙원상가 상인들을 상대로 한 사업설명회에서 “상설공연장을 설치해 외국인 관광코스로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공연장이 있어야 할 곳에는 현재 순대볶음 노점 11곳이 들어서 있다. 유일하게 한 곳에서 ‘케밥’을 팔고 있었지만, 이름만 ‘다문화 거리’일 뿐 종로 1~3가의 떡볶이 노점상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불과했다.

서울시 가로환경개선팀 이희천 주임은 “다문화 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점상 20여곳의 업종을 변경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추진단계에서 협조가 부족했다”며 “거리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하나 둘씩 업종을 바꿀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시 관계자는 “당장은 어렵지만 조만간 순대볶음 노점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키고 벼룩시장과 상설공연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종로의 노점을 일단 대로변 안쪽으로 옮겨놓고 다시 재정비하겠다는 뜻이다. 노점상인들은 “대책도 없이 어떻게 업종을 변경하라는 것이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7년째 와플장사를 해온 박모씨(50·여)는 “정부에 바란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외진 곳으로 몰아내서 괴롭히냐”며 “하루종일 있어도 외국인 한 명 못 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뭣하러 길거리에서 우리가 만든 태국 음식을 먹고 있겠나”라고 말했다. 박상석 낙원상가연합회장은 “서울시와 종로구가 상가주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고 말했다. 언행이 불일치한 전시행정의 피해가 노점상에만 덧씌워지는 데 대한 울분이었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