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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억제제 치료로 버티는 '재생불량성 빈혈' 14세 정혁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10. 00:06


사회 “희귀병 내 아들아, 의젓함 뒤에 숨긴 슬픔이 아프구나“
면역억제제 치료로 버티는 '재생불량성 빈혈' 14세 정혁군
아버지 “매일 공장 잔업에 생활비도 아껴보지만 치료비가…“

글 : 한국아이닷컴 윤태구 기자
사진: 한국아이닷컴 이혜영 기자  


“내 병이 나으면 동생 손 잡고 바닷길을 보러 제부도에 놀러 가고 싶어요. 티아라의 지연 누나도 만나고 싶어요.“

열네 살 정혁(경기 안산시 상록구)군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눈가엔 쓸쓸함이 묻어났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일을 겪은 소년은 나이답지 않게 의젓했지만 불안과 초조마저 숨기진 못했다.

지난 1월 갑자기 혁이의 몸 곳곳에 얼룩덜룩한 멍이 생겼다. 툭하면 코피도 터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병원을 찾았더니 법정 희귀난치병인 재생불량성 빈혈(다양한 원인으로 골수세포 기능이 떨어져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모두가 줄어드는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예정대로라면 혁이는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병 때문에 그토록 좋아하는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격리병실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 하릴없이 병상에 누워 지내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혁이는 외로움과 우울증도 심해지고 있다.


혁이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에 뒤이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잠깐 방황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 역할을 해주던 누나(15)와 자신을 그토록 잘 따르던 남동생에게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고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며 아버지와 누나가 그렇게 좋아했는데….“

예전처럼 밝은 모습을 찾은 아들이 마냥 대견했던 아버지 정래천(51)씨는 “혁이의 눈에 또 다시 눈물이 흐를까봐 걱정“이라며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고 자책했다.

“혁이는 반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도 곧잘 하고, 친구도 많은 해맑은 아이였어요. 내가 아내와 이혼하자 잠시 방황하기도 했지만 금세 예전처럼 밝고 착한 아들로 돌아왔어요. 처음엔 감기인 줄 알고 '약이나 먹으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렇게 큰병에 걸렸다니….“

혁이는 현재 약도 치료도 소용이 없다. 고대안산병원 소아혈액종양 우창욱 전문의는 “골수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방법“이라고 했다.

정씨는 애가 탄다. 자신도 딸도 작은아들도 혁이에게 골수이식을 해줄 수 없다는 검사 결과 때문이다. 골수 기증을 신청했지만 언제 적합한 골수를 찾을지 기약하기 어렵다.

현재로서 혁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수천만원이 될지도 모를 면역억제제 치료뿐. 혁이는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힘들어지고 아버지의 한숨이 깊어지는 것을 잘 알아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가족들을 다독이며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혁이의 나이는 고작 열네 살. 의젓함 뒤에 숨기는 외로움과 슬픔을 가족들이 모를 리 없다. 아홉 살 남동생도 “형이 아파서 슬프다“며 눈물 바람이다.

사업 실패로 수천만원에 이르는 빚더미에 앉은 정씨는 혁이가 난치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자 악몽 같은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더라고 했다.

그는 곧 마음을 추스려 혁이의 치료비 마련데 모든 신경을 쓰기로 결심했다. 매일 공장 잔업은 물론이고, 전기비라도 아껴 치료비에 보태겠다며 생활비의 지출을 줄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씨의 수입은 여전히 대부분 빚을 갚는 데 사용돼 치료비 마련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정씨는 치료비도 치료비지만 지난날 아들을 좀 더 살갑게 대하지 못한 자신이 더 원망스럽다고 했다. “혁이가 나으면 친구가 돼주고 싶어요. 목욕탕도 함께 가고 여자친구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좀 더 친한 아빠가 돼주지 못한 게 내가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자신의 목숨과도 맞바꿀 만큼 소중한 아들의 손을 잡으며 정씨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