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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청빈의 삶 실천한 '영혼의 스승'강원도 산골서 혼자 살며 '영롱한 글'로 대중과 소통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11. 23:58


탐욕의 시대… 청빈의 삶 실천한 '영혼의 스승'강원도 산골서 혼자 살며 '영롱한 글'로 대중과 소통
“내 것이라고 남은 게 있으면 맑은 사회 구현에 써달라“관련이슈 : '무소유' 삶 남기고… 법정스님 입적20100311004252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은 종교를 넘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스님이다. 오두막에서 자연을 지키며 청빈한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호소하는 글을 통해 영혼을 정화시킨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으며 ‘무소유’ 정신을 실천한 ‘영혼의 스승’이었다. 스님은 그 흔한 사찰 주지 한번 지내지 않는 등 일체의 오용락을 멀리했지만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맡아 대중 법문만은 멈추지 않았다.
  

◆삶과 죽음을 고뇌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나서다=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한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55년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선 그는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하고 오대산의 절을 향해 떠난다. 하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로 올라와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1888∼1966,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 종정)을 만나 대화한 후 그 자리에서 삭발하고 출가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하며 당시 환속하기 전의 고은 시인, 박완일 법사(전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등과 함께 공부했다. 법정 스님은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을 편찬하고 1960년대 말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운허 스님 등과 함께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절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했던 법정 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과 자책을 느낀 후 걸망을 짊어지며 본래의 수행승의 자리로 돌아간다.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 불일암 터에 토굴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이 무렵인 1976년 발간된 저서가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산문집 ‘무소유’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불일암을 찾아드는 사람들의 등쌀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그곳은 화전민이 살다가 버리고 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