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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문 마지막 레이스 “이규혁, 당신이 챔피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19. 13:26


이 악문 마지막 레이스 “이규혁, 당신이 챔피언”

ㆍ태극마크 20년 ‘올림픽 노 메달’…미니홈피 수만명 격려
ㆍ모태범·이상화도“선배덕에 이자리 섰다”

미카 포우탈라(27·핀란드)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를 앞두고 육체미 선수처럼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하고 있을 때, 아웃코스의 이규혁(32·서울시청)은 조용히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바닥의 얼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는 중학교 1학년(1991년) 이후 20년째 태극마크가 달려 있었다.

동계아시안게임은 2대회 연속 2관왕이었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도 3번이나 우승했다. 1000m 세계기록은 20일 사이에 3번이나 갈아치운 적도 있다. 1500m 세계기록도 한때 이규혁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 가슴의 태극기는 94년 릴레함메르 이후 5번의 올림픽에서 한 번도 시상대에 걸린 적이 없다. 얼음에 청춘을 다 바친 이규혁은 18일 캐나다 리치먼드 오벌의 얼음 위에서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있었다.

출발 총성이 울리고, 이규혁이 뛰어나갔다. 온 힘을 짜내듯 이를 악물고 달렸다. 이규혁의 미니홈피를 방문한 김혜인씨는 ‘20년의 세월을 한순간에 쏟아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던 당신의 모습은, 이제껏 제가 봐왔던 그 어떤 선수보다 최고의 올림픽 영웅’이라고 적었다.

이를 악문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 이인숙씨(54)는 차마 볼 수 없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대모’로 불리는 이씨는 그때 서울 잠실경기장의 스케이팅연합회 사무실에서 혼자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이틀 전 500m 때도 홀로 절을 찾아 아들이 꿈을 이루기를 기원했던 이씨였다.

모두가 이규혁을 응원하고 있었다. 600m 랩타임은 41초73. 이날 뛴 그 누구보다 빨랐다. 이규혁의 힘찬 발짓이 이어졌다. 악물었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마지막 250m를 앞두고 코너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표팀 김관규 감독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힘내, 규혁아!” 이규혁은 힘을 모두 쏟았다. 마지막 순간 날을 들어올릴 힘도 없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이규혁은 링크 안쪽에 지쳐 쓰러져 누웠다. 1분09초92로 9위. 20년 스케이트 인생을 쏟아부은 마지막 올림픽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이규혁은 말없이 퇴장했다.

백범은 “눈밭을 함부로 걷지 마라. 그 발자국이 누군가가 따라올 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규혁이 20년 동안 지친 스케이트 자국은 대표팀을 세계 최강 반열에 올리는 길잡이였다.

비록 자신은 단 한 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규혁은 이번 올림픽에서 띠동갑뻘 후배들이 4번이나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봤다. 그들 모두가 이규혁이 나홀로 버텨준 덕에 스케이트를 계속 신은 ‘이규혁 키즈’였다. 은퇴를 고민하다 이규혁의 도움으로 일어선 이상화는 “오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고, 모태범도 “지금의 주법은 물론이고, 많은 것을 알려준 선배 덕분이다. 규혁이형은 내 우상”이라고 말했다.

팬들은 ‘무관의 황제’에게 더 값진 메달을 안기고 있다. 이날만 이규혁의 미니홈피에는 수만명이 다녀갔고, 그들은 입을 모아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적었다.

이규혁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자신이 결정할 일이지만 정신력과 체력만 된다면 4년 뒤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