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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1년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16. 10:13


“당신이 남긴 두 눈은 우리들 마음의 눈“'김수환' 추기경 선종 1년… 안구 적출 집도 주천기 교수
서울성모병원 안센터 벽에는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1986년 방배동성당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에 내놓기 위해 고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쓴 붓글씨로, 추기경의 유일한 유묵이다. 김재호 명예교수가 추기경에게 받아 한때 서울성모병원 외래진료실에 걸어두다가 지난해 4월 안센터에 기증했다. 의료진과 환자들은 지금도 이 유묵을 보며 1년 전 두 눈과 묵주 하나를 남기고 떠난 추기경을 추억한다.

센터장인 주천기(54·사진) 교수에게 이 유묵은 더욱 각별하다. 유묵을 볼 때마다 1년 전 그날을 떠올린다. 추기경 선종 직후 각막 적출 수술을 집도한 주 교수는 “평소 눈 수술을 한달 100건 이상 집도했고 지금까지 한 각막 적출·이식만도 1000건에 달하는데 그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었다”며 “추기경 몸에 잘못 손을 댔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부담이 컸다”고 회고했다.

추기경이 선종하기 3시간쯤 전인 지난해 2월16일 오후 3시 그는 한 환자의 백내장 수술을 하던 중이었다. 병원 영성부원장인 최정진 신부는 그에게 “추기경이 위독하니 안구 적출 준비를 하라”고 했다.

주 교수는 당시를 또렷이 기억한다. 6시30분쯤 추기경이 잠들어 있던 9010호 병실을 찾았다. 복도에는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해 사제들,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카메라 세례를 뒤로 하고 병실에 들어선 그는 외과·내과 주치의를 내보내고 안과 전문의 3명만 들어오도록 했다.

묵주를 손에 쥔 채 환자복 차림으로 영면한 추기경의 모습은 소박한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그는 곧 “가시는 길까지 다른 이에게 새 빛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 뒤 메스를 잡았다. 안구 적출은 전공의에게 맡기는 게 보통이지만 추기경의 안구인 만큼 그가 직접 했다. 30분이 3년 같았다. 팔순이 넘는 고령에 백내장 수술 경력까지 있는 추기경의 안구 상태가 다행히 좋아 이튿날 2명에게 새 빛을 선물할 수 있었다.

주 교수는 “새롭게 눈을 뜬 것은 추기경 안구를 이식받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며 “시대의 등불인 추기경을 떠나보내는 역사적인 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연구와 수술에만 파묻힌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추기경의 뜻을 본받아 나눔의 삶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30년 의사생활 처음으로 지난해 11월 아프리카 케냐로 의료봉사 활동을 떠났다. 8일간 케냐의 케리초시 지역 병원에 머물면서 선천성 백내장을 앓는 어린이에게는 백내장 수술을, 앞을 못 보는 아이들에게는 각막이식 수술을 해 줬다. 그는 “봉사활동은 은퇴하고 여유로워지면 할 계획이었는데 케냐에서 돌아오면서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앞으로 매년 봉사활동을 다닐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유묵에 적힌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구절처럼 추기경이 남기신 두 눈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빛을 이식해 주고 있다”며 “동료 의사들과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나눔을 실천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