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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기업가 공병호 박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23. 12:21


1인기업가 공병호 박사
남들 쉬는 연휴에도 하루 10시간 일하는 억척파 힘들지만 나는 자유인 … 자기 페이스 유지가 중요
대한민국 A급 강사, ‘자기경영’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제조기라는 별명을 가진 공병호 박사. 안정된 조직을 뛰쳐나와 자신의 이름을 건 공병호경영연구소를 차린 지 정확히 10년이 된 지금, 1인기업가로서 대표적인 성공모델이 됐다. 공 박사의 홀로서기 10년을 통해 ‘인생 2막’의 성공 원칙을 추적했다.

2009년 한 해 강연 257회. 2000년 이후 10년간 저서 71권. ‘공병호경영연구소’ 외에 공식 운영 사이트 5~6개. 직접 운영하는 자기경영아카데미 4개.’공병호경영연구소의 공병호(50) 박사 프로필이다. 프로필만 놓고 보면 그는 분명 성공한 인물이다.

공 박사가 90분 외부강연을 하고 받는 강연료는 평균 200만~300만원. 하루 두 번 강의하면 그 수입이 보통사람의 월급이 된다. ‘공병호아카데미’를 통한 하루 수입만 1000만원이다. 올해는 공 박사에게 의미 있는 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해이자 그가 조직을 떠나 1인기업가로 서기 시작한 지 정확히 1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바쁘게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할 50의 나이. 그의 인생은 이제 막 피어난 꽃처럼 화려하다. ‘공병호’라는 브랜드 하나로 책 저술뿐 아니라 각종 언론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자기경영 전문가로서 수많은 인터뷰를 요청받는 유명인이 됐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자택을 찾았을 때도 공 박사는 이미 방송사 취재팀과 ‘새해 경제전망’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192m2(58평)의 아파트는 그의 자택 겸 집무실이다. 사방 벽면 전체가 빼곡하게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탁자와 소파가 놓여 있었다. 어느 때든 이 공간은 서재가 되기도 하고 인터뷰 장소가 되기도 한다. 붉은 넥타이에 감색 정장을 한 그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였다.

스무 살 청년의 열정과 중년남성의 안정감을 모두 갖춘 모습이었다. 비결을 물었다.“홀로서기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큰 비밀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오늘만 해도 새벽 2시에 자고 4시 반에 일어났습니다. 2시간 반을 자고 일어난 이유는 새벽 5시 반 강연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월간중앙> 인터뷰가 오늘의 네 번째 인터뷰입니다. 저의 하루는 보통 새벽 3~4시에 시작합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집필을 시작합니다. 매일의 강연 준비는 주로 차에서 합니다. 제가 독립해 ‘호사’를 누리는 단 한 가지는 운전기사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이 아까워서죠. 최근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에서도 강연을 의뢰해왔습니다. 중요한 강연이어서 팸플릿과 주요 내용을 계속 구상 중입니다. 숨가쁘기는 하지만 힘들지는 않습니다. 생활을 체계화해 이런 생활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죠.”

하루 24시간 그는 쉬지 않고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인터뷰 하루 전인 1월4일. 새해 첫 출근을 하는 날 서울에는 100년 만의 폭설이라는 큰 눈이 내렸다. 직장인들이 출근대란을 겪고 온 도시가 마비되던 그날 아침에도 공 박사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강남 모 기관에서 있었던 일정을 어김없이 소화하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첫 출근에 대한 소회를 남겼다.

새벽 3~4시 기상은 조직생활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일찍 일어나 집필하고, 강연을 나갔다가 오후 10시면 어김없이 집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 규칙적인 생활. 술·담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운동은 시간이 없어 집에서 틈틈이 러닝머신을 이용한다. 이 룰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의 말대로 ‘공병호의 제2의 인생’은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저는 지금 자유롭습니다. 제 스스로 돌아봤을 때 꽤 괜찮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 보고하고 명령받을 필요도 없고, 내가 만든 의견과 주장에 대해 누군가를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어떤 조직이나 기관에 속해 있다면 지금처럼 사는 것이 힘들었을 거예요. 지금 제게 주어진 자유는 젊었을 때 열심히 준비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자부합니다. 누군가 새로운 인생을 지금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먼저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 이후 자유를 유지하는 비결은 스스로 정한 자기 인생의 스케줄을 잘 지키는 것이죠.”

1인기업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그도 안정된 조직을 박차고 처음 세상에 나와 홀로 섰을 때는 막막했을 것이다. 스스로 당당하고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이 남자. 끝없는 자신감의 뿌리가 궁금했다.

모든 성공의 시작은 ‘두려움’에서 출발

공 박사는 잘 알려진 대로 경제학박사다. 1979년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1983년 졸업하고 그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Rice)대 박사과정에 입학 후 4년째 되던 1987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마쳤다.

이후 1988년부터 1990년 5월까지 국토개발연구원에서 근무했다. 그가 이코노미스트로서 확실한 토대를 갖출 수 있었던 곳은 한국경제연구원이었다.

1990년 6월부터 1997년 3월까지 거의 7년 동안 연구위원·산업연구실장 등을 거치면서 자유주의자로서 기본적 소양과 토대를 굳힐 수 있었다. 평소 시장경제원리의 홍보·교육·계몽·연구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싱크탱크 설립을 구상했던 그는 1997년 4월 자유기업센터 초대 소장을 맡기도 했다.

2000년 2월에는 개인후원자 300명과 기업후원자 150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총 150억원을 웃도는 기금(기존 기금 30억원 포함)을 바탕으로 재단법인 자유기업원을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공 박사의 돌파력과 추진력이 십분 발휘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1년. 일찍부터 꿈꾸었던 개인 브랜드를 내건 경영연구소를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공병호경영연구소의 출범이었다. 미국의 피터 드러커,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와 기 소르망 등을 벤치마킹하되 경영과 경제 전반에 대해 대중적 글을 쓰면서 강연·기고·방송·경영컨설팅 등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꿈을 담았다.

- 회사를 나오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자유기업센터를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젊은 부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과 만남은 제게 신선한 충격과 동시에 가치의 위기를 느끼게 했죠. 세상의 변화를 감지한 것입니다. 지금껏 제가 살아온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회의가 들었어요. 경제력이 곧 파워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죠. 경제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젊음의 힘을 공적 임무에만 수행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공의 요건이 꼭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베이비붐세대로 태어났습니다. ‘권욕주의’에 사로잡힌 사회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죠. 시골 출신의 고려대 졸업자로서 입신출세의 욕망이 강했습니다.”

-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제 장점이자 단점은 일단 무엇인가 하기로 결심한 이상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동안 제가 도전해 성공했던 모든 일이 ‘두려움’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알았죠. 두려움을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공 박사는 고려대 재학시절 중앙도서관에 걸려 있던, 산악인들이 매킨리봉을 오르는 사진을 좋아했다. 정상을 향해 천천히 오르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모습을 떠올려보고는 했다는 것. 사람의 캐릭터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공 박사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평상시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조직에 있든 사회에 홀로 나오든, 그 사람이 매사 어떻게 삶을 가꾸어 왔는지가 다음 인생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지금의 제 부지런한 습관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것입니다. ‘대박’을 노리기보다 꾸준히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성실하게 일하는 습성이 새로운 인생길에 들어설 때 자신에 대한 ‘해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부여하는 것이죠. 결국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거든요.”공병호 박사가 말하는 ‘인생 2막’ 성공 원칙
■ 10-10-10의 단계로 인생을 짜임새 있게 설계하라
■ 인생 계획의 마감시간을 반드시 정하라
■ 남의 이야기에 솔깃하지 말고 내 안의 북소리에 민감하라
■ 지금의 ‘습관’이 10년 후 미래를 책임진다
■ 자신과의 약속은 메모해 두고 매일 지켜라

조직의 생존논리에 섭섭해하지 마라

공 박사는 그동안 ‘자기경영’ 관련 서적을 수도 없이 펴냈다. <미래 인재의 조건> <공병호의 초콜릿> <1인기업가로 홀로서기> <공병호의 자기경영 노트> 등. 최근에 펴낸 <공병호의 내공>도 자기경영서의 일종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 이야기를 책에 소개하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생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도전하라고 말한다.

그가 개인 사이트나 책 속에서 꾸준하게 홀로서기 성공 법칙으로 강조하는 원칙 중 하나가 ‘10-10-10’ 원칙이다. 인생을 크게 10년 단위로 나누어 항상 10년 후의 삶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공 박사는 새로운 10년을 맞는 2010년 1월4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첫 출근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10-10-10’의 원칙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그가 올려 놓은 글을 보자.

“‘10-10-10’이라는 숫자가 떠오른다. 내 인생에서 처음 ‘10’은 고교시절·대학시절·유학시절을 합쳐 얼추 10년 동안의 준비기간이 있었다. 다음의 ‘10’은 한두 번 정도의 전직을 통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직장을 잡고 그곳에서 전력투구하면서 보낸 10년이었다. 전문가로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지적 토대와 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기간이었다. 끝으로 ‘10’은 2001년부터 시작되는 10년으로, 조직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일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10년이었다. 그동안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10년이었고, 그 10년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앞과 뒤, 좌와 우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지나온 30여 년의 세월 동안 10년 터울로 삶의 굵은 매듭을 지어왔다. 이제 나이는 장년기에 접어 들었고 ‘앞으로 10년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진지하게 던져보게 된다. 젊은 날보다는 불확실함은 훨씬 줄어들었지만 반면에 선택 가능한 대안들도 한층 줄어들게 됐다. 훤히 보이는 선택 대안들 가운데 자신의 북소리에 맞추어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이 내 인생의 남은 과제다. 10년이란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그렇게 긴 시간처럼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는 굵직한 족적을 남길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공 박사는 명예퇴직이나 은퇴를 하고 나서야 노년을 계획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돌발사고는 예측할 수 없으나 자신의 은퇴 시점은 누구나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언제든 나를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조직입니다. 조직의 생존논리에 대해 섭섭해하면 안 돼요. 오너가 아니고서야 능력이 안 되면 누구나 나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명백한 이론 속에서 사는 우리가 준비하지 않는 것은 본인의 인생과 가족 부양의 책임에서 일종의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성공할 확률이다. 공 박사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명문대 출신에 미국유학을 다녀온, 소위 인프라를 갖춘 인재 아닌가? 다른 사람들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은 축에 속한다. 공 박사 자신의 기본 ‘배경’이 성공한 홀로서기 사례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지 의문을 제기하자 손사래를 친다.

“제게도 암담하고 가슴 아픈 시기가 있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학벌이나 그동안 조직 안에서 쌓아왔던 인맥은 조직을 떠나자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돼버렸습니다. 독립 당시 가족도 외국에 나가 있어 제 주변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다. 외로움은 둘째치고 경제적 압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아이들 교육비는 나가는데 일정한 소득이 없어 가장으로서 심각한 위축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믿을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은 시기죠.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내 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공 박사는 홀로서기에 성공하기 위해 먼저 자신만의 룰을 만들었다.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돈을 절약한다’ ‘하루 24시간을 쪼개 나만의 스케줄을 짠다’ ‘자리 잡을 때까지 가급적 저녁약속을 하지 않고 시간을 아껴 쓴다’ 등.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었습니다. 홀로 사업을 시작한 후 밑바닥부터 다시 올라간다고 생각했어요. 37세부터 출세해 3년 동안 운전기사가 딸린 가장 좋은 승용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TV 출연도 여러 번 했죠.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홀로서고도 누군가 나를 우러러 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오산입니다. 사회에 나오면 그 모든 배경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때문이죠. 조직을 떠나 1년은 택시 한 번 타본 적이 없습니다.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강연을 다녔습니다. 당시 저의 강연료는 고작 30만원이었어요. 인생을 바닥부터 다시 포맷하자고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새로운 공병호로 다시 태어나기로 결심했죠.”

대부분의 직장인이 휴식을 취했던 올 새해 연휴 3일간 공 박사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씩 책상 앞에 앉아 일에 매진했다. 남들이 쉴 때 같이 쉬지 못하는 것 역시 1인기업가의 삶이다. 믿는 것은 자신뿐인 삶. “매일 채찍질하고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대신 자유를 얻었잖아요? 노력한 만큼 받는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닷가에서 멸치 잡는 사업을 해온 부친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인생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부친은 바다에 상어가 나타나면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조직 안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때는 못 깨달았던 긴장감을 조직에서 나오면 뼛속 깊이 깨닫게 됩니다. 누구나 조직에서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빈틈없이 준비해 위기에 대응할 것이냐, 준비 없이 위기에 휘청댈 것이냐는 순전히 자기 하기에 달려 있죠.”

“자신만 무너지지 않으면 살 길은 반드시 있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사인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평균 한 해 5권의 책을 내고는 있지만 그도 매년 베스트셀러에 준하는 책이 나오지 않으면 초조해지기도 한다. 남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이때 남의 평가나 목소리에 심하게 흔들리면 홀로서기는 위태로워진다.

“내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춰야지, 타인의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다가는 아무 것도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자기 인생을 잘 경영하는 것은 철학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요.”

일단 조직을 벗어나면 ‘남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는 것이 공 박사의 조언이다. 조직에서 나오면 소위 ‘사기꾼’이 많다는 것. 그는 많은 사람이 고수익·동업·호기라는 말에 이끌려 많은 돈을 잃는 것을 수없이 지켜봤다. 특히 대부분의 동업 요청은 믿을 것이 못 되니 냉정하게 귀를 막으라고 일침을 가했다.

인생 계획의 마감시간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기에는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언제까지 이 목표를 해내겠다는 결심이 없으면 목표나 계획은 금세 흐지부지되고 말기 때문이다. 공 박사의 10년 전 일기장에는 10년 후 자신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자신의 인생 스케줄이 빼곡히 적힌 일기장을 그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저는 10년 전 일기장에 적어 놓았던 2010년 목표매출액을 이미 달성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주는 것은 ‘자기경영’입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걸을 때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이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죠. 자신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살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초조·불안·조바심·두려움. 이런 것들은 삶을 사는 데 필요악입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이는 항상 두렵지만 스스로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공 박사가 사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아파트단지에는 유난히 은퇴한 노인이 많다. 그는 가끔 무료하게 다니는 그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노년의 인생은 마치 수영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잘사는 법도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평균수명도 늘고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앞으로 가야 할 세월이 온 세월만큼 남았습니다. 앞으로 30년, 40년의 세월은 완전히 새로 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주춤거릴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가짐만 가지고 제2의 인생에 도전하기에는 다소 무모해 보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물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본인이 해왔던 분야를 바탕으로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분야든 내공을 쌓은 사람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죠. 오랫동안 조그마한 포장마차를 해온 사람도 우리가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엄청난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떨어진 분야는 그만큼 위험이 크다는 것이죠. 젊을 때처럼 무모한 도전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본인이 해왔던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찾거나, 꼭 그 일이 아니더라도 그 분야에서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익숙한 것을 살릴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공 박사 역시 자신이 기존에 해오던 일을 기반으로 일어선 대표적 경우다. 30대에 글을 많이 써본 경험과, 연구소에 있을 때의 수많은 강의 경험이 홀로서기를 하는 데 자신감을 주었던 것.

“사람들은 대부분 퇴사 후 두 가지 기로에서 고민하죠. 그 중 하나는 다른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이 휴식기를 가지며 새로운 일을 구상하는데, 이 때 휴식은 독이 되기 쉽습니다. 휴식을 취하기에 40~50대의 1~2년은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죠. 감각을 잃게 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 역시 퇴직 후 6개월간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앞으로의 인생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휴식기간을 과감히 건너뛰었습니다.”

아버지의 홀로서기는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공 박사의 두 아들은 모두 미국유학 중이다.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와 집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경제교육을 받았다.

“조직을 떠나 집에서 일하면서 얻은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의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업혁명 전까지 우리 사회는 가게와 집이 한 곳에 있지 않았습니까? 1층에는 공장이나 가게를 차리고 2층은 가정집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집의 구조 때문에 아이들의 경제교육이 따로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런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가장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그저 밖에 나가 뚝딱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에 불과한 자리로 전락한 것입니다. 제가 집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본 제 아들들은 분명히 느끼는 점이 있었을 겁니다.”

“안정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공 박사는 40~50대 가장의 홀로서기 성공은 우리 시대 가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0~60대의 자살인구가 1만3000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위기가 온 것은 오래 전입니다. 남성에게 ‘직장’이란 곧 자기정체성과 같아서, 직장을 잃으면 정신적으로 예민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조직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다 갑자기 명예퇴직 등으로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정체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다 결국 죽음으로 삶을 끝내는 가장이 늘고 있습니다. 자기 컨트롤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퇴직 후 마치 꽃밭을 일구는 것처럼 내면을 가꾸어야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자아의 상실에도 흔들리지 말아야죠. 어떤 분이 퇴직 후 사업을 시작하면서 2년 정도 금주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올해도 취업불황의 분위기는 수그러들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기업은 잔뜩 움츠리고 있고, 한창 일할 시기인 40~50대 가장들은 명예퇴직 신청서를 내고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공 박사는 앞으로 10년은 이전 10년보다 더 가혹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사회는 계속 성장해 좋은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빈부격차의 확대로 계급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어중간한 노동력으로는 어디에 명함도 못 내밀 상황이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자신의 미래와 실력을 연마해야 합니다. 기대수준을 낮추고 재기전(再起戰)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제2 인생’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조직을 벗어나도 죽지 않습니다.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입니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하세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잘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감이 안 잡히면 새벽시장에 나가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직접 살펴보십시오. 안정된 보수를 받는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안정처럼 위험한 것은 없어요. 매사 긴장감을 잃지 말고 자신이 가장 즐겁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목적을 확실하게 정하세요. 개인의 삶을 나라가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처지에 한탄하지 말고 위기를 기회로 즐겁게 받아들이세요.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는 것. 본인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많은 것을 바꾸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부모세대에 비해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변화가 온다면 당당하게 맞서 흥미진진한 인생을 즐기며 사세요.”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