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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흔적 찾아 10년’ 서울대 이항 교수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3. 14:23


“한국 호랑이 유전자 지도 만들겠다”  
‘호랑이 흔적 찾아 10년’ 서울대 이항 교수

2008년 11월 서울대 이항(53·수의학·사진) 교수는 일본 국립박물관을 방문했다가 전시된 호랑이 두개골을 보게 됐다. 한국 호랑이의 모습과 매우 유사했다.

그는 박물관 측의 승낙을 얻어 두개골 길이와 턱 크기 등을 재 봤다. 한국 호랑이가 맞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유전자 분석이 필요했다.

호랑이 뼛가루를 들여오려면 한국과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때문이다. 이 교수는 양국 정부에 편지를 보내고 전화했다. 반 년이 넘는 노력 끝에 지난해 7월 ‘뼛가루 1g’을 얻게 됐다. 분석 결과 한국 호랑이와 유전자가 99% 일치했다.

이 교수의 최종 목표는 ‘한국 호랑이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뼛가루 1g, 털끝 한 올이라도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여기서 얻은 유전자는 한국 호랑이만의 특성을 밝히는 열쇠다.

그는 ‘한국 호랑이 추적자’로 불린다. 경인년(庚寅年) 호랑이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이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15㎡(4.5평) 남짓의 연구실은 호랑이 자료로 뒤덮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책상 위에는 호랑이 두개골 2개가 놓여 있었다.

이 교수가 한국 호랑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1999년부터다. 그해 미국의 동물원을 돌아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호랑이 우리는 서식지의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수풀이 우거졌다. 동물원 관계자는 “보존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단순한 동물 전시는 학대일 뿐”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호랑이가 살지 않았던 미국이지만 호랑이 보존을 위해 기금을 걷고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한국 학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2002년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의 은행장에 취임한 이 교수는 본격적으로 호랑이 연구에 들어갔다. 유전자와 관련된 샘플을 모으는 데 매달렸다.

국내외 학자를 만날 때마다 “털끝 하나라도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말했다. 일본으로부터 호랑이 뼛가루를 얻게 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다.

그의 연구는 유전자 분석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수십만 년 함께 지내온 영물이다.” ‘생물학적 정체성’을 넘어 역사적·민속학적 정체성을 찾는 것이 그의 목표다.

지난달 15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최된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이라는 국제 학술대회를 주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국내외 역사학·민속학자들을 초청해 호랑이에 관해 총체적인 학술대회를 열었다. 86년 일본에서 출간된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책의 번역 출간도 기획했다.

이 교수의 활동 영역은 호랑이를 넘어 한국 고유의 동물인 반달가슴곰까지 이른다.

2002년 “현재 5~8마리에 불과한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이대로 두면 100년 내 생존가능성은 3%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결과가 발표된 후 환경부는 2003년부터 5년간 매년 5마리의 반달가슴곰을 방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한국 호랑이는 민화 속에 존재했고, 역사 속에 박제돼 있었고, 동물원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야생에서 살아 숨쉬는 호랑이’를 꿈꾼다.

그는 “문화재 복원에는 힘쓰면서 호랑이 보존에는 관심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반달가슴곰이 그랬듯, 한국 호랑이도 우리의 생태계에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연구하는 것이 올 그의 목표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해’이기도 하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