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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의 한국인 관련 범죄에 국과수가 나섰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14. 12:33


온두라스의 한국인 관련 범죄에 국과수가 나섰다는데최근 3년 동안 148명…대부분 유족 차원 마무리…국과수 부검은 10건 안돼
20대 한국 여성이 중미 온두라스 교도소에 갇힌 지 두 달이 지났다. (본지 10월 31일자 B3면 보도)

온두라스에서 스킨 스쿠버를 배우던 한지수(26)씨가 동료의 집에서 네덜란드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사건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지난달 사망 여성의 부검 보고서를 입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온 결론이 전혀 의외였다. 서중석(52) 법의학부장은 “총체적으로 신뢰하기 힘든 부검 감정서“라며 “과학 살인(Science murder)“이라고 했다. 부검의가 사인을 살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두 가지를 들었다. 사인(死因)이 뇌부종에서 질식사로 바뀌었고, 마약 중독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양국 수사 관계자와 법의학자들의 관련 협의를 온두라스에 요청했다.

자국민의 해외 사건에 국과수가 나선 것은 드문 일이다. 현지 사법 절차를 따르는 게 국제법적 관례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53명의 한국인이 외국에서 피살됐지만 대부분 유족 차원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국과수 관계자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의문의 죽음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외국에서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

  
▲ 해외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사망 사고는 현지 사법 절차에 따르는 게 관례다. 사망 원인이 석연치 않아도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은 이상 유족이 하소연할 데도 없다. 사진은 미국 메디컬 드라마의 한 장면. / 조선일보 DB
1996년 10월 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최덕근(당시 54세) 영사가 피살됐다. 그는 괴한의 습격을 받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치안이 철저한 부촌(富村)이었고, 양복 속 1000달러가 넘는 현금은 그대로 있었다. 외국에서 외교관이 숨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러시아 당국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북한 공작원이 개입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외교적 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경찰은 “둔기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손상됐다“고 했지만 서 부장은 “머리를 맞았다고 해도 즉사하진 않는다“고 했다.

결국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온 최 영사의 시신은 유족에 인도되기 전 몰래 대기하던 국과수 법의학팀을 먼저 맞았다. 빈소가 차려진 병원에서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재부검이 이뤄졌다. 시신을 2차 부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재부검 과정에서 러시아 측이 간과한 작은 침 구멍이 발견됐다. 그곳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만년필 독침'에 사용하는 독극물이 검출됐다. 단순 폭력으로 묻힐 수 있던 사건에 북한 공작원의 개입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외국에서 사망한 자국민 시신을 국과수가 체계적으로 재부검한 사례는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김유철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장은 “모든 사건을 재검토할 순 없지만 합당한 의문이 제기될 경우 국과수에 의뢰한다“고 했다.

2000년 9월 29일 영국 캔터베리에서 이경운(당시 17세)군이 통학버스에 치여 즉사했다. 영국 경찰은 시속 15~20마일로 달려오던 51인승 버스가 이군의 몸을 밟고 완전히 넘어갔다(run over)고 밝혔다.

당시 스페인에 거주하던 가족들이 의혹을 제기했다. 영국 측이 시신을 은폐하려 했고, 부검 사진을 조작했다며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시신 인도를 거부하며 정확한 진상 요구를 주장했다.

그 사이 6년 동안 이군의 시신은 방부처리된 채 냉동고에 보관됐다. 결국 주영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제기됐고, 영국 측의 협조 아래 2006년 3월 23일 국과수 부검의 2명이 현지로 파견됐다.

가족의 입회 속에 이군의 시신을 6년 만에 재부검했던 김유훈 법의학 박사는 “영국 측 부검 결과와 큰 차이는 없었다“고 했다. 사건은 7년 만인 2007년 11월 1일 캔터베리 공동묘지에 이군의 시신이 강제 매장되면서 일단락됐다.

이 사건은 현지에 파견된 국과수 부검의가 자국민 시신을 재부검한 첫 사례였다. 우리 부검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재난과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아 부검의들이 풍부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도 있다.

한 부검의는 “미국에선 대개가 총상이기 때문에 추락사한 시신조차 신기해 하는 부검의도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비일비재한 죽음도 외국 부검의에게는 평생 볼까말까한 진귀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007년 7월 29일 황정일(당시 52세) 주중 한국대사관 정무공사가 호흡장애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전날 부근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고 복통과 설사를 반복하다 병원에 간 뒤 사망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황 공사의 사인을 심근경색이라고 밝혔다. 국내 언론에서 병원에서 사용한 링거액이 가짜였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한·중 법의학자와 내과, 심장 전문의들이 모여 부검 결과를 놓고 회의를 벌였다.

검토 결과 사인은 심근경색이 맞았지만 병원 측이 황 공사의 상태를 식중독으로 오인하고 잘못 처치했을 수도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황 공사의 유족들은 지난 7월 “당시 외교부가 베이징(北京)올림픽을 앞둔 중국 눈치를 보느라 사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7억4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상태다.

외교부는 2005년부터 대량 재해 대응 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해외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로 자국민이 사망했을 경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개별적인 사건·사고에 대한 구체적 지침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지난 3년간 외국에서 피살된 한국인은 148명이다. 한해 평균 5500여명의 시신을 부검하는 국과수에서 이 재외국민 사망 사고를 검토하는 사례는 1년에 채 10건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