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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급식 ‘민들레국수집’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29. 11:50


무료 급식 ‘민들레국수집’ 서영남씨


“달걀 프라이 몇 개 해드릴까요?“ “한 개만 주세요“ “한 개는 안 됩니다“ “그럼...두 개 주세요“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주려는 주인과 미안한 마음에 사양하는 손님. 인천시 동구 화수동의 한 달동네 꼭대기에 자리잡은 민들레국수집에서 매일 같이 펼쳐지는 풍경이다.

28일 오후에도 국수집 주인 서영남(55)씨는 주방과 테이블을 바삐 오가며 넉넉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식당을 찾는 노숙자들은 모두가 서씨의 'VIP'다.

◇ 사람답게 먹고싶을 때 노숙자들이 찾는 '섬김의 식당' = 민들레국수집은 2003년 만우절인 4월1일 처음 문을 열었다. 25년간의 천주교 수사 생활을 접고 세상으로 나온 서씨가 소외된 이웃을 보다 가까이에서 섬기기 위해 차린 무료식당이다.

국수집은 서씨가 교도소로 교정 사목을 하러 가는 목.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다른 무료 급식소와는 달리 배식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아무 때고 밥을 먹을 수 있다. 배고픈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10시 전에라도 문을 열고, 5시에도 손님이 찾아오면 기꺼이 상을 차린다.

서씨는 “무료 급식소는 대개 배식시간이 1시간 정도로 제한돼 있어 노숙자들이 아침부터 긴 줄을 서야 한다“면서 “사회에서 이미 경쟁에 밀리고 밀린 손님들이 여기서까지 '줄서기 경쟁'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혹시라도 손님이 너무 많아 줄이 생기는 날이면 맨 마지막에 선 사람부터 식사하게 한다.

누구나 양껏 먹을 수 있도록 식사도 뷔페식이다. 손님들이 눈치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 세 번 찾아와도 대환영이다.

밥도 반찬도 푸짐하다. 반찬은 예닐곱 가지이며 메뉴도 매일 다르다. 가장 인기 있는 반찬은 돼지 불고기와 계란말이. 서씨는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위해 요리 학원까지 다녔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수시로 찾아와 저마다 맛의 비결을 전수해주는 덕분에 국수집 음식맛은 항상 일품이다.

국수집 주인의 수첩은 VIP 명단으로 빼곡하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옆에는 건강 상태와 식성 등이 꼼꼼하게 적혀있다. 치아가 성치 않아 제대로 씹지 못하는 손님에게는 부드러운 반찬을, 과도한 음주로 속이 좋지 않은 손님에게는 따뜻한 국을 대접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민들레국수집에는 유독 서울, 천안, 평택 등 먼곳에서 오는 손님들이 많다. '사람답게 먹고 싶을 때면 먼길을 걸어서라도 민들레국수집을 찾는다'라는 것이 단골 손님들의 말이다.

◇ 홀씨처럼 퍼져나가는 '나눔 바이러스' = 민들레국수집에는 하루에 300~400명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사업에 실패해 노숙생활을 하는 이,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이 등 사연도 다양하다.

서씨는 이들의 자립 의지를 키워주기 위해 '민들레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국수집 주변에 방을 얻어 노숙자들 몇 명씩 같이 살게 하면서 홀로서기를 돕는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다.

현재 국수집이 있는 동구 화수동에는 6~7곳의 민들레 집이 운영되고 있다. 상처 많은 노숙자들이 마음을 다잡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새 사람이 되고 나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나눔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보증을 잘못 섰다가 길거리에 나앉은 한창수(가명.50)씨. 10년 동안 노숙 생활을 해온 한씨는 민들레의 집을 통해 새 삶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어떤 강요나 잔소리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지켜봐 준 서씨 덕분이었다.

올해 2월에는 요양보호사로 취직도 했다. 월급 50만원을 받으면 10만원을 떼어 국수집에 기부하고, 휴일에는 국수집 주방일을 거든다.

한씨는 “다시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면서 “민들레국수집이 아니었다면 이런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교도소를 13차례나 다녀왔다는 김덕남(54)씨의 나눔은 더욱 눈물겹다. 그 동안 어디서도 민들레국수집에서만큼 정성 가득한 밥상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김씨는 폐지를 주워 판 돈으로 생활한다.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못 펴고 종이를 주워도 한 달에 10만원 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씨는 얼마 전 그렇게 어렵게 번 돈 10만원으로 동네 빵집에서 빵을 잔뜩 사 서씨의 교도소 사목길에 동행했다. 재소자들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것이 제과점 빵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숨은 후원자들은 민들레국수집의 힘 = 민들레국수집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정부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서만 하루 한 끼, 그것도 1인당 155g의 쌀만을 제공하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들레국수집은 아직까지 쌀과 반찬 걱정을 해본 일이 없다. 몇 천원밖에 안 되는 한 달 용돈을 아껴 후원금을 보내오는 초등학생, 자신이 파는 콩나물을 나눠주는 노점상 할머니, 박봉을 쪼개 국수집을 후원하는 시내버스 노동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씨의 아내 강 베로니카(51)씨와 딸 모니카(25)씨도 최고의 후원자다. 아내는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해 번 돈의 대부분을 식당 운영비로 내놓는다. 모니카도 아르바이트 월급까지 식당에 보태는 기특한 딸이다.

하루 종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주방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돌아간다. 수많은 봉사자들이 조용히 찾아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나눔을 베푼다.

매주 한끼 점심을 굶고 계란 2판을 사오는 집배원 최신호(51)씨도 그런 봉사자 중의 한 명이다. 최씨는 주말이면 국수집에 나와 일을 거든다. 휴일인데 피곤하지 않냐고 묻자 “여기서 일하고 나면 오히려 몸이 더 가뿐해진다“라며 밝게 웃었다.

최씨는 “나 역시 넉넉하지만은 않은 형편이지만, 내 몫을 아껴서 주는 것이 '진짜 나눔'이라는 생각으로 국수집을 돕고 있다“면서 “돈이 많은 사람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향기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 국수집 문을 연 지 만 6년 7개월, 많은 것이 변했다.

개업 첫날 손님이 한 명도 없어 하루를 공쳐야 했던 국수집은 이제 수백 명의 손님으로 북적거리고, 6명이 앉으면 꽉 차던 공간도 작년 말 확장공사를 해 24석을 갖춘 어엿한 식당으로 거듭났다.

국수집 '부설 기관'도 늘어났다. 작년 4월1일에는 달동네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민들레 꿈'이 문을 열었고, 올해 7월에는 노숙자들을 위한 전국 최초의 문화공간 '민들레희망지원센터'가 설립됐다. 특히 샤워실과 세족실, 정보검색실, 도서실, 수면실 등을 갖춘 희망센터는 노숙자들의 변화와 자립을 위한 등대가 되어주고 있다.

서씨의 다음 목표는 노숙자, 출소자 등 소외된 이웃이 함께 어울려 살며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민들레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서씨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을 때보다 자기 것을 나눠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면서 “우리 손님들도 서로 의지하고 나누면서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식당. 민들레국수집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글귀는 이곳에서 하루하루 벌어지는 '기적'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랑은 자기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사랑은 나를 이웃에게 건네주는 일입니다. 사랑은 배려입니다. 사랑은 지상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게 해 줍니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