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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백련암 무환자나무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28. 16:49



  양산 통도사 백련암 무환자나무
  
양산 백련암 법당 뒤 언덕에서 절 마당을 지켜보며 자라는 무환자나무. 하늘로 오르는 용처럼 수직으로 높이 자란 나무에는 염주가 될 열매들이 달려있다.

근심이 없는 나무, 무환자(無患子)나무란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근심, 걱정이 없는 생이 있는가? 무환자나무의 이름은 오히려 역으로 우리 사는 나날이 크고 작은 근심과 고통이라는 씨실과 날실로 엮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생각해보면 천진하다 할 어린 날에도 몸집이나 음성이 큰 어른들에게서 받는 두려움에서부터 시작하여, 미래에의 불안을 전달받는 청소년기를 거쳐 온갖 걱정되는 정보들 속에서 지금까지 어느 한 시절 '무환(無患)'을 살아보지 못하였다. 그 중에도 기쁨과 행복으로 환한 순간들이 있어 걱정의 먹구름을 걷어가 버리기도 하여 살아볼 만 하다고 우리는 다시 힘을 내지만. 아무튼 '무환'이란 말은 '이상향'과 같이, 살아가는 자들의 묵은 소망일 것이다. 어떤 나무 이길래 사람들은 이런 소망을 기대었을까?

만해 등 고승 선수행 백련암 뒤쪽
승천하는 용 모습 기상으로 '우뚝'
열매 속 구슬같은 종자 염주에 사용
질병·귀신 물리치는 효험 소문도

'무환'이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인 것처럼 무환자나무도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다. 백련암에 무환자나무 노거수가 있다는 것을 산약초에 관한 글을 읽다가 알게 되어 길을 나선다. 통도사를 지나 여러 암자들로 가는 이정표를 지나 백련암 가는 길은 산 속으로 깊숙하게 이어진다. 나무들이 무성한 오솔길이 문을 열어주는 듯하다. 도란도란 흘러가는 냇물소리, 이 나무에게서 저 나무로 스쳐가는 바람소리, 새소리……. 사람살이 잡다한 근심을 씻어주느라 숲길은 한참이나 길다.

백련암은 영축산 남쪽 기슭 가장 깊은 곳에 들어있는 암자로 선수행 수도처로 전통 있는 곳이다. 만해, 경허, 구산, 성철 스님 등 많은 선지식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거쳐 갔다. 만해스님은 불경대중화를 위해 이곳에서 <불교대전>을 집필했고 경운화상은 여기서 일배일자(一杯一字)로 <금자법화경>을 썼다고 한다.

암자로 들어서자 오른편으로 생각지 못했던 은행나무 노거수가 먼저 보인다. 어른들 네다섯 사람이 팔을 벌려야 잡을 수 있을 만큼 은행나무 둥치가 굵다. 500년이 되었다고 한다. 나무가 암자다.

무환자나무는 법당 뒤 언덕 위에 서있다. 150년 살아온 나무라는데 과연 그 기상이 신비롭다. 다른 활엽수들은 우산과 같이 옆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잡으며 커 가는데 이곳의 무환자나무는 길게 수직으로 자라고 있다. 하늘 높이 올라가며 사라지는 연기 같기도 하고 용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 초가을에도 아직 푸른 잎은 새의 깃털처럼 양옆으로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달려있다. 키가 길쭉하게 커서 열매를 보려고 위로 올려다보니 고개가 아플 정도다. 은행 알만한 푸른 열매가 달려있는 게 보인다. 가을이 깊어지면 황갈색으로 익어 떨어질 것이다. 열매를 주워 흔들면 '달캉달캉' 소리가 난다. 그 속에 들은 까만 구슬 같은 단단한 종자를 무환자라 하는데, 이것으로 염주를 만든다 하여 염주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곳 무환자나무는 줄기도 매끈하게 잘 자라고 잎도 싱싱하여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법당 뒤 언덕길에 법당을 감싼 대숲과 함께 푸른빛으로 서서 절마당을 지켜보고 있다. 암자 입구 은행나무도 그렇지만 이 무환자나무도 오랜 삶을 살아온 몸이 그대로 법당이고 선지식이 아니랴. 백련암은 고려 공민왕때 창건하여 조선시대에 중건하여 내려오다가 근래에 해체하고 새로 중창 불사한 건물로 되어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법당인 은행나무, 무환자나무 노거수가 이곳을 거쳐 간 수행자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만해스님도 성철스님도 이 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떨어진 나무열매를 열어 까맣게 빛나는 무환자를 신기하게 들여다보았을까.

무환자나무는 본래 중국에서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즐겨 심던 나무인데 귀신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옛날 중국에 이름난 무당이 있었는데 그가 무환자나무 가지로 귀신을 때려 쫓았다. 그래서 이를 안 사람들이 무환자나무로 그릇을 만들어 쓰고 집안에 심기도 했다고 한다. 이 열매껍질은 사포닌 성분이 많아 물에 담가 비비면 거품이 일어나는데 예전에는 잿물처럼 비누로 사용하여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의 영어이름은 '비누열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질병의 약으로 두루 쓰여 무환자나무 한 그루가 뜰에 있으면 집안에 병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을이 깊어 가면 백련암 사람들은 날마다 조금씩 떨어지는 열매를 줍느라 무환자나무 밑을 서성일 것이다. 지난해에도 염주를 100개쯤 만들어 나누었다고 스님은 나무이야기를 해준다.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단주 하나를 보여준다. 마음을 비우고 지극하게 기도할수록 더 명료히 빛이 날 무환자염주다. 근심 없는 나날도 그렇게 열심히 살면 다가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