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제작 김영원 교수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27. 08:10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제작 김영원 교수


“백성을 가슴에 품는 어버이같은 이미지 살려“


내달 9일 한글날에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 광장에는 김영원(62) 교수가 만든 높이 9.5m(기단 포함)에 청동 22t이 들어간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진다.

경기도 이천시의 한 작업장에서 세종대왕 동상 제작을 마무리 작업 중인 김 교수는 25일 “체중이 빠지고 불면증에 걸릴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지만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상을 만든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달 5일 동상을 실어 서울로 보낼 예정“이라며 “동상 제막식이 다가올수록 주례 앞에 선 신랑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처럼 긴장되고 떨린다.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동상이 되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교수는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현대조각협회 회장과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단법인 조각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 동상은 어느 정도 완성됐나.

▲한 97% 정도 완성됐다고 보면 된다. 청동 주물 조립은 끝냈고 이제 색을 입히고 마무리만 하면 된다. 다음 주 화요일이나 수요일쯤 밝은 청동색으로 깨끗하게 색을 입힐 거다.

--동상을 만드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

▲지난 4월 25일부터 광주시 곤지암에 있는 내 작업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바닥 수평을 맞추고 철제 빔으로 기본 골조를 만들고서 그 위에 철제 파이프로 전체적인 기본 형태를 만들었다. 또 나무토막을 잘라 세부적인 형태를 만들어 그 위에 다시 10㎝ 두께로 점토를 바르는 작업이었다.

--동상이 커서 작업이 힘들었을 텐데.

▲기단만 4m에 동상 높이가 6m20㎝나 된다. 내가 지금까지 한 조각 작품 중에서 가장 컸다. 건물 공사장처럼 비계를 만들어 철판을 깔고 그 위에 올라가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 5월 10일 시작한 점토작업은 7월 25일에나 끝났다. 점토로 모양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세종대왕은 국민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분이다. 위엄이나 권위로 나라를 다스린 게 아니라 백성을 가슴에 품는 어버이 같은 분이셨다. 백성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눈빛, 그러면서 임금의 품격을 높이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온화하고 미소 짓는 표정을 잡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품격 있고 지적이고 자상한 이미지가 나와야 하는데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소 짓는 얼굴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밑에서 보면 웃는 얼굴이 우는 얼굴이 된다. 어떤 각도에서도 온화하게 미소 짓는 얼굴을 만드는 작업을 수없이 했다. 점토작업 완료 5일 전에야 내가 바라던 얼굴이 나왔다.

--용안은 무엇을 참고로 해서 만들었나.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초상화를 봤는데 너무 유약한 느낌이었다. 포용력 있는 형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 영조 대왕, 고종의 어진(임금의 화상이나 사진)을 봤다. TV에 나온 왕손 이석씨의 얼굴도 봤다. 모두 다 긴 사각형에 광대뼈가 나오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 이미지를 내 머릿속에 넣고 손으로 조금씩 조금씩 점토를 입히면서 그 형상을 만들어 나갔다.

--복식 재현도 힘들었을 텐데.

▲당시 세종대왕은 속옷, 저고리, 액주름, 철익, 답호, 곤룡포 등 여섯 겹을 입었다. 조석 복식 전문가인 박성실 단국대 교수에게 부탁해 임금의 옷을 복원하고 모델에게 입혀 놓고 작업했다. 또 세종대왕 당시 큰 벼슬을 한 대감의 미라가 옷을 입은 채 발견된 것을 보고 문헌과 맞춰서 임금의 복식을 재현한 것이다.

--방대한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일을 하면서 두 번이나 몸살이 났다. 많이 나가지도 않는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 아파서 서 있을 수도 없었는데 작업장에 나왔다. 6m나 되는 사다리를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했고, 몸이 아파 사다리에 오르지 못했을 때는 레이저포인터로 가리키면서 제자들에게 점토를 입히도록 했다. 제자와 후배 작가들 합쳐서 25명이 함께 일했는데 너무 애썼다. 불면증이 왔을 때는 잠을 자야 다음날 일할 수 있으니까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1시간 동안 미치도록 달려 몸을 녹초로 만든 다음 집에 들어가 바로 쓰러져 자곤 했다.

--중간에 작품을 맡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나.

▲왜 하지 않았겠나. 후회 많이 했다. 내가 과연 이 위대한 인물의 동상을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했다. 세종대왕을 알면 알수록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그분의 큰 그릇을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중압감이 몰려왔다. 나한테 떨어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나니까 작업이 편해졌다.

--동상의 나이대와 얼굴형은 어떻게 설정했나.

▲세종대왕이 54살에 돌아가셨는데 그전에 건강했던 40대 중.후반의 모습을 담았다. 또 시민이 동상을 보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자꾸 돌아볼 수 있게 미남형으로 만들었다.

--며칠 후면 국민에게 동상이 공개되는 데 부담은 없나.

▲광화문 한복판에서 발가벗고 평가받는 기분이다. 어떤 평가를 해 주실지 무척 긴장된다. 부끄럽기도 하다. 제막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나. 국민께서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 동상 완성에 대한 소감은.

▲수많은 조각작품을 만들었지만 이번 작품을 하면서 골병이 들었다. 당분간 좀 쉬어야겠다. 이런 규모의 동상 제작은 쉽지 않은데 내가 그런 기법을 갖게 된 것에 만족한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