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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희망 나누고파, 김성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20. 08:41


        


“지금이 나의 전성기… 관객과 ‘희망’ 나누고파”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1인32역’ 김성녀

마당놀이와 연극, 국악, 뮤지컬과 악극, TV와 영화 등 장르불문의 만능 배우 김성녀(59)씨가 1인32역의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19~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02-747-5161)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2005년 초연한 이 작품은 김씨가 연기 인생 30년 만에 처음으로 도전한 모노드라마로 그해 ‘올해의 예술상’을 비롯해 평론가 선정 우수연극 베스트3, 동아연극상 등을 휩쓸었다. 그동안 ‘마당놀이의 여왕’이라는 명성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김성녀 연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18일 예술의전당에서 김씨를 만났다.

명작에는 불황도 없다. 불황은 물론 신종플루에도 아랑곳없이 벌써 70%의 예매율을 보이고 있다. 이 정도면 통상 매진상황이다. 김씨는 “좋은 작품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관객의 힘 덕분”이라며 “텍스트의 힘과 온몸을 던져 이를 표현한 배우의 노력, 그리고 음악과 조명, 연출 등 스태프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삼위일체가 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모두 32명이다. 한둘도 아니고 그 많은 역의 성격 규정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제 주변의 군상들, 제 삶의 파편을 하나하나 모아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가공의 인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30년, 40년 무대에 서오며 다양한 역할을 모자이크했습니다. 다섯살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등장인물 모두를 합하면 제 삶이 온전하게 재구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씨는 “다섯살짜리 역은 오히려 쉬운데 처녀역이 제일 불편하고 어렵다. 관객들이 혹시 부담스러워하고 징그럽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역시 내 나이 때인 할머니역이 가장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역도 다양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역할도 그에 못지않다. 어머니에 아내에, 배우에, 교수, 극단 운영자에 정치하는 시누이를 위해서 선거운동까지 하기도 했다.

“평생을 여러가지를 가지고 사는 게 제 인생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연기할 때는 연기만 하라고 했으나 춤과 노래, 연희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에서 살았습니다. 한군데 집중하지 않아 정통파가 아니라는 지적에 속상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이것이 배우로서 넓게 만들고, 인생을 값지게 만든 영양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엄마역, 아내역 등을 좀 더 잘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김씨는 특히 “따듯한 격려와 칭찬보다는 곧이곧대로 직선적으로 비판하는 성격 때문에 주위에 상처를 많이 줬다”고 후회했다.

“저는 우직하게 무조건 목표만 보고 갔어요. 그래서 모두가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픈 지적이 약이 되지만 때론 칭찬과 격려가 더 좋은 약이 된다는 것을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어떤 점이 참 좋다고 먼저 말한 뒤 이런 부분을 고치면 더 좋아지겠다고 말합니다.”

내일이면 환갑이라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관리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속은 환갑”이라며 “특히 ‘벽속의 요정’바이러스에 걸리면 현실적으로 체력이 달리는 것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벽속의 요정’은 휴식시간 포함 2시간10분짜리 대작으로 사실 모노드라마로는 좀 버거운 작품이다.

김씨는 “나는 볼 살이 많아 느낌이나 분위기가 좋은 배우가 아니다”며 “이번 공연은 어쩔 수 없이 온갖 역을 하지만 잘 늙어서 나이에 맞는 배역을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나이에 무대에서 몸 쓰는데 지장이 없고, 아직 매력있게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 긍정적이고 잘 웃는 성격 탓일 겁니다. 또 술, 담배를 안 하고 미역이나 다시마 등 산지에서 좋은 식품을 구해 먹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매일 학교에서 젊은 학생들과 지내니까 그 기운을 받아 젊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늙으면서도 상큼한 기분을 잃지 않고 늙은 척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간단한 작품의 소개를 부탁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일본 작가 후쿠다 요시유키(福田善之)의 원작을 극작가 배삼식씨가 6·25전쟁 상황으로 번안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심각한 내용은 아닙니다. 전쟁이나 이데올로기 문제는 극의 상황만 제공할 뿐 극은 온전히 가족 간의 사랑에 바쳐졌습니다. 원작은 벽 속의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우리 작품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딸과 아버지 세 사람의 관점에서 전개됩니다.”

‘벽속의 요정’은 벽에서 말소리가 들리며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자 벽속에 요정이 사는 줄 믿었던 아이가 커가면서 그 벽속의 요정이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남편을 벽 속에 숨긴 채 40년을 살아야 했던 아내의 이야기, 청년으로 벽속에 숨어들었다가 노인이 돼서야 나온 아버지의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입체적으로 맞물려 있다.

사실상 대화가 없는 모노드라마는 연극이 아니라는 주장과 실력있는 배우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양극단의 주장이 있다.

“아직 익지 않은 배우들이 잘 못했기 때문에 (전자와 같은) 그런 말이 나왔겠지요. 또 그윽하게 앉아 젊을 때의 추억, 사랑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살롱드라마가 아니라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벽속의 요정’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 말이 나왔을 거예요. 추송웅씨가 ‘빨간 피이터의 고백’을 할 때는 어디 그런 이야기가 나왔나요. 모노드라마는 경륜있는 배우가 혼신의 힘을 다해야 성공할 수 있는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씨가 연극, 정극을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만큼 ‘마당놀이의 여왕’이라는 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속상할 때가 없지 않아요. 마당놀이를 1981년 1회만 빼고 지금까지 28년째 매년 공연하고 있는데 마당놀이처럼 어려운 연기가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웃기면 개그입니다. 연기는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연습을 통해 만들어 내 웃기는 것입니다. 지금 마당놀이가 ‘독도’처럼 외로운 형국인데 진짜 독도처럼 서로가 자기것이라고 우기는 상황이 얼른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씨는 그러나 마당놀이의 한계도 인정했다.

“80년대 언로가 막혀있을 때 우회적으로 돌아서 풍자, 비판하는 마당놀이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언로가 너무 열려서 문제잖아요. 그래서 풍자보다는 춤과 노래, 연희의 형태로 온 가족이 즐기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앞으로의 문제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코드의 개발입니다.”

이와 관련, 그는 “배우와 연출자 모두가 늙어 새로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연출자인 손진책씨가 항상 ‘내가 천재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한탄합니다. 이만큼 온 것도 성과이기는 하지만 손 선생을 비롯해 작곡가 박범훈, 안무가 국수호 선생 등 스태프는 물론 윤문식, 김종엽씨 등 더 이상 새로움을 개발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

김씨는 “물론 전통을 현대화한 새로운 장르로 아직도 매년 10만명의 관객이 찾는 것은 분명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지만 “새로운 젊은 배우와 연출, 작곡, 안무가가 나와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온 가족이 연극인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고, 연출가 남편에 이제 딸 지원씨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고생했던 부모님을 보면 하고 싶지 않았을 법 하고, 또 쉽지 않은 이 길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도 같다.

“시키지는 않았지만 반대도 안 했습니다. 인생이란 결국 자기가 선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도와줄 수 있는 길을 찾기는 찾겠지만 이게 도와줘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자기가 혼자 서야 합니다.”

크게 돈도 되지 않으며 온몸을 혹사해야 하는 연극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어려운 질문이네요. 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 뭔가 인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 순수한 무엇이 연극에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좋은 연극을 해서 관객들이 희망을 찾을 때 그 기쁨은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지요.”

“지금이 나의 전성기”라는 김씨는 “이 전성기가 70세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김성녀씨는…

▲1950년 서울 출생 ▲1968년 진명여고 졸업 ▲1990년 단국대 국악과 졸업 ▲1995년 중앙대 음악학 석사 ▲1973년 극단 민예극장 입단 ▲1978년 국립창극단 입단 ▲1981년 국립극단 입단 ▲1986년 극단 미추 창단동인 ▲박귀희로부터 가야금병창 이수 및 김연수제 춘향가, 서편제 심청가, 흥부가 등 오정숙, 김소희, 성창순, 한농선, 신영희 등으로부터 사사 ▲현재 극단 미추 배우, 운영위원 ▲중앙대 국악대학장 ▲수상:백상예술대상 연기상(1985년 뮤지컬 ‘돈키호테’, 1990년 뮤지컬 ‘영웅만들기’, 1991년 ‘욕탕의 여인들’),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1991년 ‘욕탕의 여인들’, 1993년 ‘한네의 승천’), 제1회 한국뮤지컬 여우주연상(‘7인의 신부’), 춘사영화제 여우조연상(2000년 ‘춘향뎐’)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