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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 인생을 바꾼 작품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5. 16:42


손숙 “제 인생을 바꾼 작품입니다”


유진 오닐의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는 고(故) 이해랑 연출로 1962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국내 초연됐다.

당시 한 여고생이 생애 첫 연극으로 이 작품을 만났다. 소녀는 그동안 느끼지 못한 감동에 큰 충격을 받고 연극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문학소녀였던 이 학생은 그날 이후 연극에 빠져들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성장했다. 연극배우 손숙 씨다.

그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작품인 '밤으로의 긴 여로' 무대에 선다. 1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공연에서 어머니 메어리 역을 맡았다.

“그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문학과는 너무 다른 직접적인 감동이었거든요. 연극에 미쳐서 고3이 됐는데도 머릿속에는 연극 생각밖에 없었어요. 제가 연극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잊을 수 없는 작품이죠.“

첫 연극으로 이 작품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이해랑, 장민호, 황정순, 최상현 등이 출연해 감동을 전한 그 무대가 아니었다면 연극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 본 연극이 당대의 대표작이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었죠. 제 연극계 최고 스승인 이해랑 선생님과의 만남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인연이 많은 작품이어서 언젠가는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때가 왔네요.“

이번 무대는 손숙 씨에게 여러모로 각별하다. 이해랑 연출이 가장 아꼈던 여배우로 꼽히는 그가 고인의 서거 20주기 추모공연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게 됐고, 또 한 명의 스승인 임영웅 연출이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았기 때문이다.

“연극계의 두 스승인 이해랑, 임영웅 선생님, 그리고 명동예술극장이라는 무대까지 정말 많은 의미가 있어요. 만만치 않은 작품이지만 출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요. “

유진 오닐의 자전적인 희곡인 '밤으로의 긴 여로'는 사랑과 증오로 얼룩진 한 가족사를 그린 작품으로, 메어리는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고 약물에 의존하며 꿈 많던 여학생 시절을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10주년을 맞은 대표작 '손숙의 어머니' 등 수많은 작품에서 가슴 절절한 어머니를 연기했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그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평범하지 않은 어머니 역인데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요즘 잠도 잘 오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이런 명작을 보여 드리게 돼 기쁘고 새로운 역할에 흥분도 된다“고 말했다.

1963년부터 연극을 시작해 어느덧 연기 인생 5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12월 공연 예정인 '가을 소나타'까지 올해에만 네 작품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어쩌면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무대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곳인데 이를 견딜 힘이 없으면 그만 놓아야죠.“

그는 “10년쯤 전부터 연극에 회의를 느꼈고 하고 싶지 않았다“는 의외의 고백도 했다.

왜 연극은 늘 가난해야 하는지, 왜 배우가 공연에 와달라고 사정하고 관객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는지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 그래서 한때는 대학로에도 가지 않고 다른 이의 작품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이런 생각이 사라졌다.

“1-2년 전부터는 연극이 눈물겹게 느껴졌어요.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감동을 느끼고 희망을 찾는다면 보람이 있어요. 그때부터 자유롭고 편안해졌어요. 이 시대에도 이 공연을 보고 나처럼 인생을 바꾸는 관객이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