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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출받아 인생창업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7. 16. 11:45



“희망 대출받아 ‘인생 창업’…‘이웃사랑’ 이자 갚을 것”

▲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출소자 고복희씨 식당에서 출소자 사장인 김진선, 조연구(오른쪽부터)씨와 ‘기쁨과 희망은행’ 은행장인 이영우 토마스(오른쪽 세 번째) 신부가 수박을 들고 웃고 있다.  

중부지방에 호우주의보가 내려 폭우가 쏟아진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장승배기 길 골목에 있는 ‘우리두리’라는 식당에는 의미있는 점심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기쁨과 희망은행’ 은행장인 이영우 토마스 신부와 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한 사장(?) 3명이 조촐한 영양탕 파티를 벌였다. 이날 모인 사장들의 특징은 과거에 죄를 짓고 복역을 한 출소자다. 이 식당의 주인 고복희(여·53)씨와 양말가게 사장 조연구(41)씨, 이동식 과일행상 업주 김진선(52)씨는 서울시 일자리 플러스센터에서 창업교육을 받고 ‘기쁨과 희망은행’에서 1000만∼2000만원씩 창업자금을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한 지 1∼2개월이 됐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전과자라는 이유로 취업도 대출도 안 돼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희망은행이 소액이지만 대출을 해 줘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며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아직은 힘들지만 반드시 성공해 우리를 도와준 희망은행에 다시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런 희망가를 부르게 된 사연은 흘려 듣기 어렵다. 고복희씨는 2002년 조류인플루엔자(AI)가 동남아와 중국 등지를 휩쓸고 가기 전까지는 월매출 3000만원이 넘는 닭고기 유통업체 사장님이었다. 1995년부터 시작한 닭 수입업체가 AI로 타격을 받으면서 자금 압박을 받았고 결국 어음과 수표, 사채 등을 막지 못해 2005년초 12억원의 부도가 났다. 그는 부정수표 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10개월의 실형을 살고 2006년 2월 출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소 후 그는 식도정맥류와 간경화로 네 번의 수술을 받았다. 그나마 수중에 조금 남은 돈도 병원비로 다 써버리고 그에게는 희망이라고는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친구가 알려준 곳이 희망은행. 지난 4월 희망은행을 찾아간 그는 출소한 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대출 자격조건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그동안 병을 앓았다는 것을 인정받아 대출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는 4월 2주일간 창업교육을 받은 뒤 희망은행으로부터 1000만원의 사업자금을 저리로 대출받았다. 그는 이 돈을 동생과 공동투자해 5월7일 식당을 시작했다.

고씨는 “출소를 하고 나서도 병을 앓아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지만 희망은행에서 돈을 빌려줘 어렵게나마 식당을 시작했다”며 “아직 개업 초기라 장사가 잘 되지는 않지만 우리 식당의 자랑인 청국장찌개가 잘 팔려 돈을 벌게 되면 희망은행에 꼭 후원금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관악구 봉천동 쑥고개 사거리에서 8평(26㎡)짜리 점포를 얻어 ‘양말마을’이라는 양말 유통업을 하는 조연구씨도 지난해 3월 청송직업훈련교도소에서 나온 출소자 사장이다. 그 역시 2005년 부도가 나기 전에는 서초동 뱅뱅사거리 인근에서 월 최고 매출 1억2000만원을 자랑하는 유명 의류 브랜드 매장을 경영하던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의류업이 하향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부도가 나 부정수표 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4년의 실형을 살았다. 조씨는 교도소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출소하면 직업을 갖기 위해 군산직업훈련소에서 제과제빵자격증을, 청송직업훈련교도소에서 특수용접자격증을 땄다. 출소 후 그는 자격증을 바탕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업체에 취업, 떳떳한 직업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조씨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곳을 나와 다시 같은 직종에 취업했지만 똑같은 이유로 올해 초 쫓겨났다.

절망 속에 찾아간 곳이 법무보호복지공단. 그곳에서 조씨에게 희망의 길을 알려줬다. 희망은행에서 출소자 창업을 위한 대출을 한다는 것을 귀띔해줬다. 그는 창업교육을 받은 뒤 6월10일 조그만 가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t짜리 트럭도 한 대 장만했다. 그의 부인이 매장을 관리하고 자신은 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양말을 판다.

조씨는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다 보니 차에서 먹고 자기도 하지만 내 사업을 한다는 기쁨에 하나도 힘들지 않다”며 “양말 장사는 여름이 비수기라 매출이 좋지는 않지만 반드시 성공해 대출금도 갚고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전셋집도 하나 장만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 일대에서 과일 차량행상을 하는 김진선씨는 폭력과 상해 등으로 네 번이나 ‘큰집’ 신세를 졌다. 지난해 6월 상해죄로 1년6개월 동안 실형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올 3월까지 과일 노점 등 여러 가지 장사를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밑천도 없는 데다 서울시의 단속이 강화돼 노점상이 설 자리가 없었다. 돈을 빌려 폼나게 장사를 해 보려 했지만 채무불이행자인 그에게 돈을 빌려주는 금융권은 한곳도 없었다. 그는 6월8일 희망은행으로부터 1000만원을 대출받아 1t트럭을 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김씨는 “사업을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돼 시행착오도 겪고 있지만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게 돼 정말 좋다”며 “대출금이 부족하긴 하지만 열심히 일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