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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 좋은글 낭송“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12. 07:33



◈ 편지 ◈

언제 적이었던가.
하얀 백지 펼쳐놓고 창너머 먼 산 바라보며 무슨 말부터 꺼낼까 고민하며
그리움 가득한 가슴으로 또박또박 혹여 노안이시라 읽지 못하실까 크게 써내
려가던 글씨, 한참 마음을 쏟아 써 내려가다 보면 절로 눈물 한 방울 뚝 떨어
져 허한 가슴의 크기를 무언으로 속삭이던 그날들, 겉봉에 또박또박 주소와
본제입납 정성으로 쓴 다음에 밥공기 열어, 쌀밥 한 톨 골라내어 꼭꼭 여며
붙이면 그 순간부터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도시로 유학길 나서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나이인
데, 자취를 시작하였다. 된장찌개 한 가지로 몇날 며칠을 견디며 공부하던
그때 편지 한 통 오고가면 보름이 훌쩍 지나갔다.
보낸 순간부터 회신이 올 때까지 집배원 아저씨의 빨간 자전거가 그리도 기
다려 지던 날들 편지에 동봉되어져 온 부모님의 가득한 사랑, 가끔은 책도 사
고 육성회비도 내고 자투리 얼마 남거든 용돈 쓰라시며 전신환을 부쳐 오면
득달 같이 우체국으로 달려가 현금으로 바꾸고 그동안 미루어왔던 목욕도
하고, 서점에 들러 책 냄새 배 터지도록 담을 수 있었다.
33 개월의 군 생활 동안에도 하얀 백지에 담은 정겨운 안부는 끊일 줄
몰라 일주일이 멀다하고 편지를 보냈다. 다행이 부모님께서 가난에 쪼들
렸던 옛날이었지만 소학교를 졸업하셨기에 한글, 한자 해독이 무난하셔서
주고받는 편지를 혹여 부러워하는 벗들도 있었으리. 일부 벗들은 편지를 보
내긴 하지만 답장을 받지 못해 애태우던 모습을 보며 좋은 부모를 만나 일
일이 사랑 담긴 답장을 주시는 어머님, 아버님이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였던 펜팔, 주간지 뒤에 나오는 주소록을 일일이 베껴
답장을 줄만한 사람을 골라 편지를 보내면, 처음엔 서먹서먹하여 긴 글을 쓸
수 없었지만 몇 통의 정성담긴 편지가 오가면 연인이나 된 듯 가슴이 두근거
리며 보내고 기다리기를 얼마나 하였던가.
우연처럼 만나기도 했던 그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들, 그 마음들을 나르느라
수고하셨던 집배원 아저씨도, 그 편지가 부모님께서 오는 편지인지, 펜팔하는
친구에게서 온 편지인지 금방 알아보시고, 펜팔 하는 친구의 편지일 때는 묘한
웃음 지으시며 “잘 되?” 하시며 짧은 관심을 표하기도 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편지가 뜸해지면, “다른 친구 찾아봐, 더 좋은 친구 만날
수도있잖아” 하시며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도 해주시던 그 분들......,
언제부턴가 집 한 채 값이던 백색전화가, 청색전화 수준으로 값이 떨어지더
니, 거리마다 빨강 공중전화가 설치되고, 한 집 건너 한 대씩 보급되면서 편
지가 없어졌다.
급한 일 아니어도 전화 한 통화면 간단하게 해결되고 말로 주고받는 것이기에
의사 전달이 더 명확해 편지보다는 전화를 선호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은 그 전화조차 한 사람이 한 대씩 가지고 다니는 시절이니 더더욱 편지가
써지지 않는 세월 속에서 이젠 편지라는 단어에서 조차 파란 잉크냄새 되새기
며 향수를 느끼는 세월 속을 산다.

자식들에게 편지 받아본 기억이 손꼽을 정도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어버이날 편지쓰기를 시켜 몇 줄 “아버지 어머니 낳아주시
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 또는 스스로 결혼기념일, 생일 등 기념일을
기하여 작은 봉투에 넣어준 몇 줄의 편지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는 걸 보면 편지란 것에 묘한 집착
을 가진 세대가 아닐까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격식을 갖추지 않은 편지여도 따뜻한 마음이 빼곡하게 채워진 편지 한 장 받고
싶은 아침이다. 과욕인 줄 알면서 그저 욕심 부려본다.
내가 먼저 보내면 정성담긴 답장이 올까, 편지를 보냈는데 전화로 “편지 잘 받
았어... ”하면 더 실망이 클 것 같아 그냥 접어버린 마음......

비오는 날이면 파란 잉크냄새가 그리워진다.

                                                       << 시인, 수필가  이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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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처럼 보슬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초하 지절(初夏之節)에
아버님, 어머님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옵시며, 앞뜰 논의 벼들도
두 분의 고운 땀으로 풍년을 기약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줄 믿사옵니다.

불효자식은 아버님, 어머님의 크나큰 사랑으로 맡은바 소임을 다하며 열심히
사회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아뢰올 말씀은......

<중략>

저녁 바람이 무척 쌀쌀합니다. 오랜 농사일로 얻으신 신경통 재발하지 않도록
건강 유념하사옵고 다시 뵈올 그날까지 옥체금안(玉體錦安)하옵심을 앙축
(仰祝)하나이다.

                                                                          불효자식 OO 올림”

격식 갖추어 편지 써 본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결혼하고 난 후에는 제대로 편지다운 편지를 써 본 기억이 없네요, 사는게 바빠
허겁지겁 살다 보니 편지를 쓸새가 없었고, 문명의 이기 통신장비의 발달로 편
지보다는 전화로 이야기하고, 잘 계시지요? 한마디 안부로 소임을 다한 듯 그렇
게 살아온 날들, 젊은 날 부모님께 보내던 편지의 흔적은 기억 밑바닥에 웅크리
고 앉아 되올 수 없는 추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국보 가족님!
이번 주말엔 편지 한 통 써보면 어떨까요? 보낼데가 없으시다구요? 그럼 그냥
써서 서랍에 넣어두지요, 먼 훗날 그편지 읽어보며 그땐 이런 생각을 했구나
추억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별밤에 쓰는 편지처럼 나에게로 보내는 편지라도
쓰고 싶은 날 입니다.

한 주 즐겁게 마무리하시고, 주말 내내 넘치는 행복과 함께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