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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노래 몰래 부르던 일본인 장인어른의 비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3. 3. 21:19


조용필 노래 몰래 부르던 일본인 장인어른의 비밀

김미리 기자


일본인 아내를 뒀다는 이유 하나로 친구들 사이에 일어번역기가 된 대학친구 하나가 있다. 얼마 전 갑자기 쏟아진 번역 일감을 들고 친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이번엔 또 뭐냐?” 언제나처럼 녀석과의 대화는 어정쩡한 안부 없이 본론으로 속행했다. 한 30분쯤 됐을까, 일감을 풀어놓고 놀라운 직독직해 능력을 발휘하던 녀석이 운을 뗐다.
“야, 우리 아들, 2분의 1 섞인 줄 알았는데, 8분의 5더라.”
“뭐라고, 2분의 1, 8분의 5, 무슨 얘기야?”

당최 알길 없는 암호 같은 숫자를 늘어놓던 친구는 얼마 전 일본에서 있었던 장인(丈人) 장례식에 얽힌 일화를 꺼냈다. 친구의 장인은 일본에서 방송국 카메라맨이었는데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지난해 세상을 뜨셨다.

장례식 명부에 보니까 ‘高’라고 성씨를 적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구. 아내하고 ‘다카(高의 일본어 발음)상(さん)’이 참 많이들 오셨네 하고 나지막이 말하는데 한 사람이 조용히 끼어드는 거야. ‘다카’가 아니고, ‘고’라고 읽는 거라고. 순간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구.”

친구의 직감은 맞았다. 알고 보니 장인의 어머니, 즉 아내의 할머니가 재일교포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장인은 살아생전 단 한번도 당신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신 적이 없었단다. 심지어 한평생 살 부대끼며 산 장모님조차 남편의 뿌리를 까맣게 모르고 계셨다. 장모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 달리 결혼을 하고 나면 일본에선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르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고씨인지, 다카상인지 굳이 캐내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친구가 받은 충격(혹은 배신감)도 적잖았다. 딸이 자신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의 나라’ 한국의 청년을 남편감으로 데려왔을 때조차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당신이었다.

▲ 가수 조용필
비밀의 형체가 조금 드러난 이후, 장인이 육십 평생 움켜쥐고 있었던 뿌리 찾기의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났다. 장례가 끝나고 유품을 정리하러 장인의 서재에 들어간 유가족은 서랍 깊숙이서 한번도 보지 못한 앨범 하나를 발견했단다. 낡은 사진첩엔 장인어른이 대학생이던 1966년 한국을 전국 일주하면서 찍은 흑백 사진이 소복이 꽂혀 있었다. 낡은 초가집과 먼지 풀풀 날리며 비포장 도로를 돌진하는 허름한 시골버스, 남루한 복장의 행인들. 그 안의 장인은 무표정했다. 장인의 서랍 깊은 속에서 잠자고 있던 ‘1960년대의 한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방황했던 스물 세 살 청년의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장인의 평생지기가 영정 앞에서 흐느끼며 풀어놓은 회한도 충격이었다. “자네가 우메다(오사카 지명)에서 구성지게 부르던 조용필 노래도 이젠 못 듣겠구먼. 우리 둘이 한국 여행 간 거는 잊지 말아다오. 흑흑” 장인이 과하게 취하면 오사카 선술집에서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며 당신 몸 어디에 흐르고 있을 한국의 피를 느꼈다는 사실, 종종 평생지기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는 사실 역시 처가 식구들은 전혀 몰랐던 얘기다.

“와이프가 그러더라구. 우리 아들들이 한국과 일본 2분의 1씩 섞였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자기 몸에 한국 피가 섞였을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 없다고. 적잖이 놀란 모양이야. 그런데 그거 알아? 그 얘기를 처제들한테는 또 말 안 하더라고. 우리 같으면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남았을 법한데 말이야.” 한국과 일본의 피가 반반 섞였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몸에는 한국과 일본의 피가 8대5 비율로 흐르고 있는 셈이 됐다.

“사실 한국 피가 얼마나 어떻게 섞인 게 뭐 그리 중요하겠니. 어쩌면 내 피 452분의 1이 몽고 피일지도 모르고, 또 일본 피가 나도 모르게 654분의 1만큼 섞여있을지도 모르잖아. 다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당할지도 모를 차별과 멸시 때문에 조용히 지내셨다는 게, 놀랍고도 한편 안타까울 따름이지.”

친구는 말한다. 두 아들에게 외할버지의 뿌리에 대해,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 가감 없이 설명해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가르칠 거라고. 무엇보다 ‘섞임’으로 인한 차별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