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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사형뒤 '축하연회'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8. 14. 08:22


안중근 의사 사형 뒤 ‘축하 연회’

일제가 안중근 의사를 사형한 바로 그날 저녁 '축하 연회'를 가진 사실이 KBS 취재로 확인됐다.

1910년 3월 26일 오후 5시, 중국 뤼순의 고등법원장 관사에 일제 관원들이 모였고

5시간 넘게 이어진 연회는 히라이시 고등법원장이 주관했으며 마나베 지방법원장과 미조부치 검찰관, 구리하라 형무소장, 미즈노 변호사 등 안중근 재판 관련자들이 참석했다.

안중근 의사를 사형한 바로 그날 저녁 축하 연회를 연 것이다.


최서면(국제한국연구원장) : “안중근 같은 정치범을 사형시키기엔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사형을 시켰다는 것이 파티를 연 배경...“


이같은 사실은 당시 만주지역에서 일본인이 발간한 만주일일신문 1910년 3월 29일자 기사에서 확인됐다.


안중근을 변호했던 변호사까지 참석한 사형 축하 연회에 이어, 이들에게는 거액의 상여금도 지급됐다.


1910년 한국병탄을 목전에 둔 일제가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온 안중근 사건을 신속히 사형으로 마무리한 공로를 치하한 것이다.


신운용(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 : “살려준다면 그 다음에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의 분발, 그리고 국제질서 상에서 한국의 위치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가 초래...“


안중근 사체 유기에 이어 사형 뒤 축하 연회와 포상 사실까지 새롭게 밝혀지면서 100년전 하얼빈역에 울린 총성이 일제의 침략 야욕을 막기위한 정당한 의거였음이 더욱 분명해졌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