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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억 재산 아낌없이 KAIST에 기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8. 13. 08:06


밑천 76원으로 일군 300억 재산 아낌없이 KAIST에 기부

지난달 27일 대전시 유성구 구성동 한국과학기술원(KAIST) 소속 발전재단에 e-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자연체험장인 서전농원 김병호(68) 대표의 부인 김삼열(60)씨가 보낸 e-메일이었다. 그는 “남편이 평생 모은 재산을 KAIST에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부인은 2004년부터 뇌졸중을 앓고 있어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e-메일을 보냈다.

김 대표 부부와 아들 세윤(36)씨 부부는 12일 KAIST를 방문, 서남표 총장과 기부금 약정식을 했다. 기부한 재산은 용인의 서전농원과 임야 9만4380여㎡로 시가 300억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약정식에서 “평소 돈을 벌면 좋은 일을 하는 데 쓰기로 가족끼리 약속했다”며 “KAIST가 가난 때문에 못 이룬 내 학업에의 꿈을 이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KAIST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해 국민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내가 기부한 재산이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1941년 전북 부안군 보안면 상림리 빈농 집안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뒤 농사일을 돕다가 17세 때 당시 돈 760환(76원)을 들고 상경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작정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서울 미아리에 있던 친척집에 머물면서 식당 종업원·가게 점원을 전전했다. 한 시간 정도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면서 돈을 모았다. “지독하게 일하고 무섭게 아꼈다. 무더운 여름날 1원이 아까워 사카린 음료수 한 잔 사 먹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상경한 지 1년 뒤 모은 돈 2000원으로 미아리 자동차 부품가게를 차렸다. 연중 쉬는 날이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했다. 자동차 부품가게를 10년 정도 운영해 번 수천만원으로 중고 버스 다섯 대를 구입했다. 이 버스로 서울 지역 시내 버스회사에서 지입차를 운영했다. 이때부터 번 돈 대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했다. 74년에는 미아리에 2층 집을 구입해 지금의 부인과 결혼했다.

88년에는 서울 등지에 흩어져 있던 부동산을 모두 정리한 뒤 20여억원으로 서전농원을 사들였다. “나이 들면 농장이나 운영하며 여생을 편하게 보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서전농원에는 밤나무 5200여 그루와 사슴·오리를 키우는 사육장이 있다. 가을철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밤 수확 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김 대표는 평소 부인과 아들에게 “재산은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가겠다”고 다짐해 왔다. “어렵게 번 돈인 만큼 뜻깊은 곳에 써야 한다”는 게 소신이었다. 뇌졸중을 앓기 시작한 2004년부터는 “살아 있을 때 재산 사회 환원을 완성해야 한다”며 기부 작업을 서둘렀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우연한 기회에 ‘서남표 총장의 KAIST 개혁’을 주제로 한 언론 보도를 봤다. 2006년 7월 취임한 서 총장이 100% 영어수업 제도를 도입하고 교수정년보장(테뉴어) 심사에서 40%를 탈락시키는 등 캠퍼스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KAIST에 기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부인과 아들도 그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는 2005년 고향인 부안군에 장학금 10억원으로 ‘나누미 근농(根農)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김씨 부부와 아들은 93년 병원에 실습용 시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서울대 병원에 자신들의 시신을 사후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서울 종로에서 카페 뎀셀브즈를 운영하고 있는 아들 세윤씨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5년 전부터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에 매달 10여 명의 아동(1인당 3만여원)을 후원하고 있다.

김 대표는 “서울 효자동 빌라(14억원 상당)와 전세(7억원)로 살고 있는 용인 노블카운티 등 일부 재산이 남아 있어 여생을 보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며 “부인과 자식에게 남은 재산도 나중에 기부하도록 당부해 뒀다”며 활짝 웃었다. 서남표 총장은 “김 대표의 숭고한 정신이 KAIST에 영원히 남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강구하고, 건축 중인 IT(정보기술)융합센터 명칭에 김 대표 부부 이름을 넣겠다”고 말했다. (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