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희망블루스"

신현림 : 당신의 우체통

ohmylove 2011. 3. 26. 23:31


나에게 지워진 사람들,
주소도 안 떠오르는 거리들, 약속장소와 날짜들,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만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
어느 날 내가 살었는지 안 살었는지도 모를 삶이여

-황지우 시 "두고온 것들"




나도 이런 느낌이 드는데, 하고 무릎을 친 시입니다. 내가 살았는지 안살았는지 모르는 삶. 맘이 아프지만 맞습니다. 이 시를 읊조리며 소포 부치러 밖을 나섰습니다.

해가 기울어가는 오후 5시 반. 문닫기 전이라 우체국엔 사람들이 없더군요. 제 책을 부치며 은혜입은 사람들에게 갚을 것이 많아 오래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만난지 오래 되어 지워진 사람도 많고, 추억이 많아진만큼 잊혀진 것도 많네요. 문득 제 자신이 텅 빈 우체통처럼 또 하나의 사연, 또 하나의 사랑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마 당신도 그럴 겁니다. 새롭게 누군가를 만나 당신의 우체통도 기뻐 빨갛게 웃으시길 빕니다.

부러웠습니다. 전국중소 서점이 무너져 오백여곳밖에 남지 않았다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이승연 누드사건의 뿌리도 책 안 사읽는 독서풍토, 정체성의 혼돈에서 비롯된 거라 봅니다. 정체성없는 문화는 정복당하고 맙니다. 아무리 삶이 어렵지만 책 안 읽는 국민에게 비전이 있을까요. 요즘 이게 고민입니다.

헌책방도 들러보고, 밥 두끼정도 아껴 먹고 단골서점에서 책 한 권 살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