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러브레터"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ohmylove 2007. 12. 8. 09:37
[금요칼럼] 걷기의 즐거움 - 안도현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                      
[200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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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다리의 관절은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하나의 연결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한 발자국을 옮겨 걷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걷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춘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몸 전체가 걷는 일에 기꺼이 복무하고자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기 시작해 보라. 우리의 몸은 막 시동을 건 엔진처럼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팔은 발걸음에 맞춰 저절로 흔들릴 것이며, 눈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샅샅이 탐색하며 나아갈 곳을 살필 것이며, 귀는 무한히 열리게 되고, 코는 벌름거리게 될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혼자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아니다. 걷는 일이 유아독존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일이라면 의미가 없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는 순간, 이 세계는 우리의 걷기에 동참한다. 풍경은 우리가 떠나온 곳이 궁금해 천천히 뒤로 지나가고, 달빛과 별빛은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를 따라온다. 바람은 귀밑머리를 간질여 줄 것이며 땅은 발바닥을 떠받쳐 줄 것이다. 웅덩이는 웅덩이대로, 돌부리는 돌부리대로 유심히 우리의 걷기를 보살펴 줄 것이다.


승용차가 별로 없던 시절, 불과 한 이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참 많이 걸었다. 자동차는 걷기의 추억 따위를 옹호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수수밭머리에 해 지는 풍경도, 마른 수숫대 위에서 뛰는 방아깨비도 보여주지 않으며, 수숫대가 서로 몸을 비비며 서걱대는 소리도 들려주지 않는다. 사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우리가 보았거나 들었거나 하는 풍경과 소리들은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차창 밖으로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일 뿐이다.


자동차가 적으면 당연히 오래 걷기 마련이다. 북한을 방문하면 부지런히 길을 걸어가는 북쪽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이불 보따리만한 짐을 등에 지고 걷는 할머니도 있고,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걷는 소녀도 있고, 앉은뱅이책상 같은 걸 어깨에 메고 걷는 소년도 있다.


이제 남쪽 사람들은 의식주를 위해 걷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걸을 필요도 없다. 어지간한 거리는 자동차의 바퀴가 걷는 다리의 수고를 덜어주니까 말이다. 남쪽 사람들이 걷는 이유는 딱 하나, 바로 건강을 위해서다. 비로소 도시의 강변이나 등산로는 아침저녁으로 걷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걷는 것으로는 모자라 뜀박질이 대유행이라고 한다. 건강마라톤 대회는 참가자들이 매년 급증하고 있는 덕분에 주최 측이 밑질 일이 없다고 한다.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술자리를 나가봐도 ‘걷기 예찬’은 끊이지를 않는다.


한쪽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걷고, 또 한쪽은 먹고사는 일에 배가 불러 살을 빼려고 걷는 현실이 나를 참 아득하게 만든다. 남과 북의 경제력의 차이일 뿐이라고, 콧방귀 한번 뀌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뱃살을 빼기 위해, 건강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걷는다는데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걷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내 뱃살이 두꺼워질 때 누군가 꼬르륵거리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게 걷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자의 도리다.


나는 혼자 어슬렁거리며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 어슬렁거려야 미세한 데 눈길을 줄 수 있고, 세상이 요구하는 질서의 뒤편을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도 어슬렁거리며 걷는 일로 하루를 다 소비하는 자일 것이다. 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되도록 많이 걸을 것을 주문한다. 그런데 학교 앞 거리에 어느 날 이런 현수막이 나붙었다.


‘이유 없이 배회하는 자를 신고합시다’


학교 부근 파출소에서 내걸은 이 현수막의 폭력성 앞에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대한민국은 이유 없이 배회할 자유도 없는 나라라는 말인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라는 멋진 말도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고 싶다.


‘걷는다는 것은 나와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세계와의 대화다’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