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모 승부 조작과 '나는 가수다'기무라 일본 저널리스트 기사100자평(35)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요즘 싸이 공감 잇글링 조선블로그 MSN 메신저스크랩메일인쇄입력 : 2011.04.02 03:11 / 수정 : 2011.04.02 23:05
일본의 대재해와 원전문제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피해 전모 파악까진 아직 멀었고 원전도 여전히 심각한 상태이며 일본 사회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격려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축구 자선경기가 열려 일본 국가대표팀과 J리그 선발팀이 대전했다. 경기장에서 이뤄진 모금은 순식간에 1500만엔에 달했다. 상장(喪章)을 팔에 단 선수들은 전력을 다하는 모습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겠다며 진지한 경기를 펼쳤다. 재난 지역 출신 선수들도 갈채를 받으며 열심히 뛰었다. 수익금은 물론 기부된다고 한다.
문득 생각났다. 이재민들에게 힘을 주는 스포츠 선수의 모습. 야구나 축구도 그렇지만, 일본인들의 눈에 더 익숙한 것은 스모(일본씨름) 역사(力士)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예전이라면 이때쯤 피해지역을 방문해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될 육체노동에 힘을 쓰고, 대피소를 위문 방문하는 모습이 보도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못 보는 것은 '야오쵸 문제' 때문이다. 야오쵸는 메이지(明治)시대 야오야(야채 가게)를 하던 조베에(長兵衛)라는 이름의 아저씨를 칭하는 말로 그는 스모 스승과 바둑친구였는데 일부러 져서 스승의 비위를 맞췄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처음에는 스모에서 일부러 지는 것에만 쓰이다가 미리 승패를 정해서 승부에 임하는 일 전체에 사용하는 말이 됐다.
올 들어 다수의 현역 역사들이 '야오쵸'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모계에서는 벌집을 뒤집어엎은 것 같은 소동이 일었다. 전모가 해명될 때까지 흥행은 할 수 없다고 해서 3월에 하루바쇼(春場所)가 중단됐고, 5월 나쓰바쇼(夏場所)도 개최가 불투명하다. '야오쵸' 관여자로 간주된 약 20명의 역사들에게는 스모계 추방을 포함하는 엄정한 처분이 내려질 전망이라고 한다. 존폐의 위기에 직면한 스모계로서는 피해지역을 방문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스모 팬들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하나는 '진지한 승부에 성원을 보내왔는데 배신당했다'는 것. 스모에는 우승 횟수나 연승 기록 등 수많은 '대기록'이 존재하지만 그 뒤에 '야오쵸'가 있었다면 그 기록들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심각한 문제다. 또 하나는 '스모는 순수한 스포츠가 아닌 오락이며 야오쵸는 예부터 있었다.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은 위선이다'라는 의견이다. 스모는 진지한 축구 경기를 보는 것과 다른 눈으로 봐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어려운 것은 진지한 승부와 오락 사이의 선을 긋는 일이다. 앞으로 스모는 '진지한 스포츠'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인가, '대중의 오락'으로 존속시켜야 할 것인가. 큰 체구의 역사들이 부딪치는 스모는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스모 중계를 즐겨 기다리는 우리 딸들을 위해서도 또 재난 피해자 위로를 위해서도 존속을 바라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스모 역사들을 보는 눈길이 이미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착잡하다.
한국에서는 서바이벌을 내세운 프로그램에서 룰에 준하면 탈락해야 할 가수에게 재도전 권리가 주어진 것이 논란이 됐다. '시청자를 우롱했다', '예외가 통하는 삐뚤어진 사회의 축소판' 등의 비판이 쇄도했다. '코리안 드림'을 향해 일반인이 실력을 겨루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자 이번에는 프로 가수들을 경쟁에 참여시켰다. 일희일비하면서 진지한 눈길을 던지는 시청자들의 비판도 이해가 된다. 다만 이런 프로그램을 '오락'으로 보는 나는 이 소동에서 경쟁 지향적 사회의 단면을 본 듯했다. 오락 프로그램마저 예외 없는 순수 경쟁을 추구하는 한국 사회. 진지한 승부와 오락 사이에 어떻게 선을 그을 것인지,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볼 여유는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사 출처 : [제클뉴스]
http://news.zecl.com/news_view.php?bo_table=m4&wr_id=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