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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관객앞으로 다가선 “ 해운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8. 16. 11:00


해운대’가 다섯 번째 ‘1000만 관객 영화로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7월 22일 개봉된 이 영화는 14일 현재 24일 만에 505개 스크린에서 840만여 관객을 모았다. 역대 흥행 5, 6위인 ‘과속스캔들’(830만)과 ‘디워’(842만)를 앞선 성적. 계속해서 매일 17만~20만 명 정도씩을 더 모을 것으로 예상돼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이상 2004) ‘왕의 남자’ ‘괴물’(이상 2006)에 이어 ‘1000만 관객 영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네 편의 ‘1000만 클럽 영화’들과 함께 놓고 거칠게 분석해 본다면,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보다도 훨씬 순수한 ‘오락 영화로서의 DNA’를 가지고 1000만 클럽에 가입했다는 의미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남긴 역사의 상흔이나, 미쳐버린 왕의 숨겨진 이야기 같은 한국적 특수성이나, 민족적 감수성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 순수하게 재난만을 가지고 재미를 만들어 낸 할리우드적 블록버스터라는 뜻이다.

‘괴물’ 역시 괴수영화라는 할리우드적 장르를 가져왔지만 독특한 한국적 사회적 맥락을 은연중에 깔아놓거나, B급 영화의 감수성이나 블랙 유머들을 가미한 코드가 돋보였던 데 비하면 ‘해운대’는 소재나 주제, 화면까지 탈한국적이다. 무대가 부산 해운대가 아니라면, 주인공들이 짙게 내뱉는 부산 사투리가 아니라면 사실 어디로 배경을 삼는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영화다.

하지만 친숙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한 번쯤은 가봤을 낯익은 관광지에서 집채 같은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는 설정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한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런 기대에 못지 않게 꼼꼼하게 재현해 낸 화면과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는 ‘재난영화’라는 익숙한 장르 영화의 눈높이를 무리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맞추어 낸다.

재난을 경고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나 그 의견은 무시당하고,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이 서로의 사랑과 아쉬운 인연과 보여주지 못한 애절한 감정을 가지고 거대한 파도 속으로 잠긴다. 누군가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고 안타까운 죽음의 이별이 있은 뒤에야 재난은 이들의 곁을 떠난다. 이미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된 장르의 언어들은 그대로 충실하게 ‘해운대’에서 재현된다.

  
윤제균 감독은 대신 곳곳에 가미한 코믹 코드와 아이디어 넘치는 CG화면으로 이 재난영화의 ‘토착화’를 시도한다. 도시를 휩쓸어 버리는 파도와 물속에 갇힌 사람들의 이미지는 이미 눈에 익은 장면들. 그러나 광안대교 한가운데에 컨테이너선이 처박혀서 컨테이너들이 다리 위에 비처럼 내리고 이들 사이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장면, 차오른 물 때문에 전신주의 변압기가 터져 감전사한 시체들이 둥둥 떠 있는 장면, 태풍을 예감한 갈매기 한 마리가 느닷없이 싸움판을 벌이는 주인공들의 차에 턱 머리를 박고 죽는 장면 등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는 상관없는 영민한 머리로 만들어 낸 화면들이 빛을 발한다. 오랜 시간의 쓰나미 장면이 아님에도 제대로 서스펜스의 리듬을 만들어내 가며 충분히 스릴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다.

종종 목적을 알 수 없는 신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때도 있고, 야구장 신 같은 데서는 과한 욕심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연인과 엄마 아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딸과 애틋한 아버지의 이별 같은 인간들의 이야기들은 재난과 맞물려 보편적인 정서의 울림을 만들어내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해운대’의 볼거리는 놀랍고, 감정은 애절하고, 곳곳에 박힌 유머는 영화의 무게를 부담없이 가볍게 느끼도록 만든다. 휴가철 제때에 터져준 이 영화는 세대가 어우러진 온 가족이 모여서 그럴듯한 구경거리를 찾을 때 적당한 답안으로 충분하다. ‘천만 클럽’ 가입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