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 지대의 설경
이병헌 주연의 "JSA"를 보면서, 영화 속에 내 군대 시절의 이야기도 조금 있어서 관심있게 보았었다.
항상 방탄복에 실탄으로 무장하고 생활을 했지만, 내가 생활한 GP에서는 북한군 병사를 맨 눈으로도 볼 수 있고, 게다가 내 업무가 매우 특이한 중요한 임무였다.
심리 대면병.
직접 마이크를 들고 북한군 병사 (북한에서는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적공조"라고 부른다. 북한에서는 엘리트나 당간부 아들들을 비무장지대에 보내고 있다.)와 이야기하여 최종적인 귀순을 이끌어내는 임무이다.
평상시에는 한국 사회의 민주적인 모습,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 한국의 진취적인 기상 등에 대한 내용으로 북한군에게 일방적인 방송을 하지만, 급박한 상황(군사분계선을 넘는다든가, 특이한 활동을 한다든가)이 있을 경우에는 수시로 북한군에게 동향을 물어볼 수 있다.
GP에서 생활하는 한국 일반 병사들은 '도로정찰'이라는 것을 하면서, 비무장 지대 남측 관할 지역을 순찰하고 북한군의 동태를 살핀다. 이런 와중에, 지난 70년대에는 영화 "JSA"처럼 북한군과 마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내가 근무한 1990년대 중반에는 직접 마주칠 기회는 없었고,
불과 500미터를 앞에다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을 뿐이다.
판문점처럼 불과 몇 cm가 아니더라도,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볼라치면 북한군의 땀구멍까지 볼 수 있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제대한 지도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간혹 텔레비젼에서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도발을 했다는 소식이나,
우리측 GP와 북한군 GP사이에 총격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
남북한 정상들이 2번이나 만났다는 등.
확실히 내가 근무했던 10년전보다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오늘 아침에 난 조선일보의 "JSA 비보이" 관련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마치 내가 10년전 비무장지대에서 마이크를 들고,
북한군을 향해 당시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던 유행가요를 불러주던 기억이 났다.
비무장지대 가득 울려퍼지는 건, 반주도 없는 내 목소리 뿐이었지만
그 어떤 희망으로,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아련하지만,
언젠가는 북한군 통일이, 선봉이 친구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기회가 있기를 바래본다.
[ 유투브에 올라온 JSA-B Boy 동영상 ]
[ 조선일보 기사 보기 ]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부동 자세로 서 있는 남북 병사들의 모습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런데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오고 남측 헌병이 갑자기 비보이(B-Boy) 댄스를 춘다. 북측 병사도 뒤질세라 화려한 개인기로 비보이 댄스를 선보인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양측 병사들이 현란한 춤의 공방을 펼친다. 남북의 병사들이 마치 비보이 배틀(battle)이라도 벌이는 듯 하다. 결국 병사들은 서로 악수를 청하고 함께 어우러져 흥겨운 춤을 춘다.
그러나 양측 장교들의 등장과 함께 이들은 원래의 부동자세로 돌아간다. 판문점엔 다시 긴장감이 감돌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연 병사들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번진다. 동영상의 주인공들은 세계대회를 여러 차례 석권한 최고의 비보이들이다. 한국의 비보이들은 해외에서 세계 최강으로 인정 받으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3년 전에 만들어진 판문점 비보이댄스 동영상이 지금 유투브닷컴(youtube.com)에서 30만 클릭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뒤늦게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해외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겁다. “실제로 비무장지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한국으로 가자”….
동영상에 등장하는 김덕현(26), 신종훈(25), 김효근(24), 김홍렬(24)씨는 외국에서 더 유명한 비보이들이다. 세계 대회도 수 차례 석권했다. ‘피직스’라는 닉네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김효근씨는 이 동영상에서 북한군 병사로 출연했다. 김씨는 “외국에서는 남과 북이 함께 만든 영상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면서 “그래서 종종 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때 인터넷상에는 이 동영상이 정말 판문점에서 촬영됐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동영상 촬영장소는 경기도 양수리에 있는 영화 ‘JSA’의 세트장이다. 군복과 군화 철모도 모두 빌린 것이다. 영화 ‘JSA’를 패러디한 동영상이지만 엉뚱한 웃음만 주는 가벼운 모방은 아니다.
동영상을 제작한 신찰리(31·카르텔 크리에이티브)씨는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며 “서로 춤을 추며 교류를 할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하며 동영상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남북의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 시대적, 공간적 리얼리티는 비보이 배틀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유쾌한 가상현실로 바뀌었다.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김덕현씨는 “배틀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순수한 비보이들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올해 개봉한,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 벤슨 리(Benson Lee)의 다큐멘터리 영화 ‘플래닛 비보이’(Planet B-Boy)의 주요 장면으로 삽입되기도 했다.
글=이기훈 기자 jjamary@chosun.com
사진=키위운영팀 김미선 atombear@chosun.com
입력 : 2007.11.29 22:57 / 수정 : 2007.11.30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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